[돋을새김-서완석] 덕수와 문 사범, 그리고 정주영

입력 2015-12-07 17:30

멕시코행 기내에서 지난해 영화관에서 봤던 ‘국제시장’을 다시 한번 봤다. 한국전쟁과 흥남철수, 독일 광부와 베트남 근로자를 거치며 가장 아닌 가장으로 굴곡진 인생을 산 주인공 ‘덕수’를 보면서 이번에도 펑펑 울었다. 특히 덕수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구절 ‘힘든 세월에 태어나서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게 참 다행’이라는 대목에서 왠지 모를 아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 많은 아버지들이 덕수처럼 험난한 풍파를 뚫고 힘들게 살았다.

멕시코 태권도 대부 문대원(72) 사범의 인생도 덕수처럼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 덕수와 비슷한 연배인 그는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멕시코에 ‘태권 왕국’을 건설했다. 국내에는 이렇다할 직장이 없어 많은 젊은 태권도인들이 해외로 발걸음을 돌렸던 1950년대 말 그는 가족과 함께 먼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전미무도대회를 3연패(1965∼67년)하면서 무술 배우 이소룡과도 교분을 쌓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안락한 삶이 보장돼 있었지만 문 사범은 1969년 멕시코행을 결심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간단한 스페인어 단어 쪽지와 태권도복이 그가 휴대했던 유일한 재산이었다.

일본 가라데에 밀려 태권도 존재조차 미미하던 멕시코에서 그는 가라데 도장을 하나하나 격파하면서 태권도의 영역을 넓혀갔다. 45년이 흐른 지금 멕시코 전역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일군 5000개의 태권도장과 200만명의 수련생은 그의 도전이 낳은 빛나는 성과다. 프로복싱과 프로레슬링 등 격투기에 특히 열광하는 멕시코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종주국을 능가할 만큼 성장했다. 매년 굵직한 국제대회가 개최되고 프로리그까지 운영될 정도다. 45년 전 결행한 한 사람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멕시코의 문화를 바꿔놓은 것이다. 지구촌에는 문 사범처럼 성공기를 써내려간 사범들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영화 속 덕수와 문 사범의 인생에서 치열한 삶의 열정과 도전정신, 그리고 모험심을 읽는다. 덕수 세대의 아버지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온 가난에 항거해 기꺼이 제 몸을 바침으로써 오늘날 후손들에게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을 물려줬다. 최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일대기도 덕수와, 그리고 문 사범과 꼭 닮아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했던 그는 실제로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던 이였다. 하지만 실패를 운명 탓으로 돌리고 곧바로 체념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는 결국 성공신화를 써냈다.

눈길을 다시 ‘국제시장’으로 돌려 보자. 명문대 입학이 확정된 남동생의 학비 마련을 위해 덕수는 독일행이란 도전에 나선다. 이후 여동생의 혼수 마련을 위해 덕수는 기꺼이 전쟁 중인 베트남행을 택한다. 절박함은 모험심과 용기를 주는 법이다.

청년의 절반이 백수라는 요즘. 젊은이들은 왜 편하고 안락한 직장만 무작정 기다리고 있을까. 덕수와 문 사범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는 젊은이들의 무한도전과 모험을 기다리는 다양한 일거리가 있다. 취업 전문가들은 가장 고도화된 경제구조를 가진 미국에서조차 대졸자의 40%만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취업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은 해외취업이다. 미국인 대졸자들이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는 것처럼 해외로 눈길을 돌리자.

다행스러운 점은 맨몸으로 해외 취업한 덕수와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언어와 전문지식으로 잘 준비됐다는 점이다. 이젠 문 사범, 정주영 같은 모험심과 도전정신으로 정신무장만 하면 된다. 그리고 실패의 교훈조차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청년들이여, 힘들 내게나.”

멕시코시티=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