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48) 스파게티 웨스턴의 추억

입력 2015-12-07 17:29
영화 ‘Il Grande Silenzio’ 포스터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렸다. 흰 눈밭을 보니 특이하게도 설원(雪原)을 무대로 펼쳐졌던 스파게티 웨스턴이 한 편 떠오른다.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스파게티 웨스턴의 양대 산맥으로 분류되는 세르지오 코르부치 감독의 ‘Il Grande Silenzio(1968)’. ‘위대한 침묵’이자 ‘위대한 벙어리’ 또는 ‘위대한 실렌지오(사람 이름)’라는 중의적 제목의 이 영화는 코르부치의 걸작일 뿐 아니라 스파게티 웨스턴 역사상 최고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컬트 클래식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기묘한 매력이 있는 장르다. 지금은 완전히 한물 간, 거의 잊혀진 서부극의 한 변종에 불과하지만 정통 웨스턴과는 또 다른 특별한 느낌을 준다.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더 특별하다. 여러 면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의 컨벤션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첫째, 배경. 일반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 하면 작열하는 태양과 흙먼지 날리는 황야가 연상되기 마련이나 이 영화는 설원이 무대다. 둘째, 주인공이 죽는다(이 비극적 엔딩 때문에 국내에서는 극장 상영되지 않았다). 영화적 설정은 이렇다. 악당이 현상금을 쫓는 ‘바운티 헌터’이고 주인공 총잡이는 법을 어겨 바운티 헌터에게 쫓기는 사람들 편이다. 그런데 결국 바운티 헌터들이 싸움에서 이긴다. 명분은? 비록 바운티 헌터지만 ‘법의 편’이라는 것. 어찌 됐건 ‘법=정의’라는 형식논리다. 이 엔딩을 놓고 논란이 일자 코르부치는 주인공이 살아남는 ‘해피 엔딩’ 판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퀜틴 타란티노가 최근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을 부활시키려 했으나 역부족임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두 세르지오(레오네와 코르부치) 같은 재능 있는 감독들이 참 아쉽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