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NCS기반 자소서 ‘억지 문항’… 머리 싸맨 지원자

입력 2015-12-07 04:00 수정 2015-12-07 08:40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는 김지연(가명·26)씨는 지난달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일반채용에 응시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가 이해할 수 없는 문항을 발견했다.

‘최근의 국제적인 이슈와 관련해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 후 우리 위원회 업무를 개선 혹은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시해 주십시오.’

김씨가 생각하기에 최근 중요했던 국제 이슈는 이슬람국가(IS)의 프랑스 파리 테러 같은 건데, 이를 어떻게 영진위 업무와 연관시켜야 할지 난감했다. 게다가 영진위가 채용하려는 직군은 국제 이슈에 민감한 국제사업팀 소속 직군이 아닌 인사·노무관리 등을 담당하는 일반 사무직이었다. 김씨는 6일 “영진위가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 방식을 올해 처음 도입하면서 자기소개서에 직무능력평가를 억지로 넣다보니 문항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IS와 중동 영화의 연관성을 짜깁기해 자기소개서 항목을 채웠지만 서류를 제출한 뒤에도 제대로 자기소개서 항목을 작성한 것인지 찜찜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공공기관에 NCS 기반 채용 방식이 도입됐지만 기관의 준비와 이해 부족으로 자기소개서 문항이 치밀하지 않아 취업준비생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NCS란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체계화한 것이다. 이른바 ‘스펙’보다는 직무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올해 130곳의 공공기관이 NCS 기반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직무능력과 무관한 자기소개서 항목으로 응시자를 평가하는 공공기관이 여전히 많다. 올해 NCS 기반 채용을 실시한 신용보증기금의 자기소개서 문항을 보면 ‘성장과정을 통한 자기 소개’ ‘성인이 된 뒤 성취감과 좌절감을 느꼈던 경험’ 등 직무능력과 무관한 평가 위주였다. 그 외 일부 공공기관들도 ‘이타적 행동 경험을 기술하라’ ‘성격의 장단점을 서술하라’는 식으로 기존과 별반 차이 없는 자기소개서 항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NCS의 취지와 어긋난 자기소개서 평가가 계속되는 이유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NCS 도입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제 어떻게 채용이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뒤 NCS 기반 평가 항목을 만들고, 이를 공단에 보고만 하면 된다. 보고 형식이기 때문에 평가 항목이 NCS 취지에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수정되지는 않는다. 또 NCS 채용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권고 사항이라는 점도 NCS 취지에서 벗어난 채용이 계속되는 이유다. 채용 현장에서는 NCS를 급하게 도입해 실제 채용 과정에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한 공공기관 채용 담당자는 “국정과제로 선정되면서 어쩔 수 없이 NCS를 도입하긴 했지만, 사실 기술직이 아닌 이상 대부분이 일반 사무직인데 NCS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막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