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업 집사 ‘잘 나가던 개원의’ 버리고 해외봉사 “나눔·섬김이 진정한 행복 깨달았죠”

입력 2015-12-06 21:26
박세업 집사(오른쪽)가 최근 모로코의 한 병원에서 현지 의료진과 함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글로벌케어 제공
박 집사(왼쪽)가 아프가니스탄 바그람한국병원 원장으로 있을 때 현지인 인턴십 수료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글로벌케어 제공
모로코의 한 학교에서 기초 보건교육을 진행 중인 박 집사(오른쪽). 글로벌케어 제공
“저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저보다 더 오래 봉사하신 분도 많고요. 겸손하게 계속 봉사와 섬김의 길을 걸으라고 격려하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 경기도 성남 본부에서 최근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시상식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박세업(53·창원 신광교회) 집사는 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해외봉사상은 해외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국제의료구호 비정부기구(NGO) 글로벌케어의 북아프리카 모로코지부장인 그는 모로코 현지에서 결핵 퇴치와 학교 보건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박 집사는 “늘 돌봐주신 하나님과 위험하고 어려운 곳에서 같이 있어준 가족, 현장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88년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박 집사는 98년 베트남에서 선천성 기형인 구순열이 있는 어린이를 수술하면서 의료봉사와 인연을 맺었다.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잘 나가던’ 개원의였던 그는 이후 꾸준히 해외 단기 의료봉사에 참여하면서 ‘봉사가 나의 소명’이라는 확신이 들자 2002년 병원을 처분했다.

그는 “의대 공부를 마친 뒤부터 어떻게 해야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면서 “해외 단기 봉사활동을 다니며 어려운 이웃과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5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 5년간 현지 병원에서 일했다. 현지 의료진에게 복강경수술기법 등 첨단 의료기술도 전수했다. 그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겠다는 마음에 밤낮으로 수술하고 진료하면서 보냈다”며 “치안도 불안했지만 현지인 친구와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아픔과 실제적인 필요를 조금씩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 집사는 2011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1년 여간 보건학을 공부한 뒤 모로코로 향했다. 모로코는 자연환경이 뛰어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의료환경이 열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모로코는 결핵 사망률이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박 집사는 수도 라바트와 살레 지역에 자리를 잡고 결핵퇴치에 나섰다.

“결핵은 6개월 정도 약을 잘 먹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제시간에 약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가난해서 병원에 잘 가지 못하고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아 치료효과가 낮습니다.”

그래서 보급한 것이 ‘스마트 약상자’다. 이 약상자는 복용시간이 되면 알람이 울리고 환자가 약을 먹으면 지역의료기관에 자동으로 통보돼 복용여부가 확인된다. 약을 제때 복용하지 않으면 의료진은 바로 복용을 권고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치료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75% 수준이던 복약률이 스마트 약상자 덕분에 98%까지 올랐다.

박 집사는 모태신앙인이다. 대학시절 해외봉사에 대한 비전도 갖게 됐다. 하지만 바쁜 병원생활 때문에 신앙생활에 전념하지 못하다 97년 모친이 뇌종양으로 숨지면서 인생과 신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현지에서도 크리스천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그래야 종교적 차이 때문에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제가 일하는 곳은 이슬람 지역입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무슬림과 함께 단식을 합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0대 중반이 된 그는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박 집사는 “사람들의 절망의 눈물이 소망의 웃음으로 바뀌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한다”면서 “이 세상 어딜 가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몸과 마음이 깊은 아픔 속에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