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장에는 길이 38m의 서예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했다. 일반적인 붓글씨가 아니라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념이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과 ‘언해본’을 한글주석까지 붙여 쓴 작품이다. 해례본과 언해본 전체를 붓글씨로 제작하기는 처음으로 서예가 청농(靑農) 문관효(62·사진)씨가 10년을 매달린 역작이다.
전남 진도 출신인 청농은 서예대가 하남호씨의 제자로 열 살 때 붓을 잡았다. 젊은 시절부터 한글서예에 심취한 그는 오랜 연습과 실험을 거쳐 훈민정음을 현대적인 서예작품으로 승화시킨 ‘청농체’를 창안했다. 붓글씨를 통해 훈민정음을 대중에 널리 알린 공로로 2013년 서예계의 최고상인 제35회 원곡서예문화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2013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한글문화 큰잔치’에 길이 60m 대형 한글 현수막을 설치해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과 정신을 홍보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한글로 빚은 한국의 애송시’ 전을 열어 주목받았으며 올해 다시 ‘한글문화 큰잔치’에 초대 작가로 선정돼 한글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에 대한 해설과 용례를 붙여 1446년에 펴낸 해례본은 모두 5337자로 이뤄져 있다. 문씨는 “한글의 창제 원리와 목적, 역사적 의미 등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한 글자라도 잘못 쓸 경우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기 때문에 갑절 이상의 노력이 요구됐다. 3년간 집필한 끝에 8m 해례본 붓글씨가 완성됐다.
언해본은 해례본을 1447년에 풀이한 책으로 한자를 한글보다 큰 글씨로 앞세웠다. 청농의 언해본 붓글씨는 한글을 앞세우고 한자를 작게 병기했다. 그는 “세종대왕이 1448년에 펴낸 ‘월인천강지곡’을 보면 한글을 한자보다 크게 적었는데 한글이 주류문자로 쓰이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세종대왕의 정신을 본받아 제작한 언해본은 길이 30m로 7년의 세월이 걸렸다.
‘훈민정음의 큰 빛’이라는 타이틀로 11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훈민정음 글자를 활용한 ‘동행’ ‘빛’ ‘이슬’ 등도 출품됐다. 청농의 작품을 처음 소개한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의 도움으로 이번 전시가 성사됐다. 이 관장은 “세종대왕이 어려운 한자 때문에 고생하는 백성들을 편안케 하기 위해 쉬운 한글을 창제한 정신을 광복 70주년을 맞아 보여주는 전시”라고 말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훈민정음 해례본·언해본, 붓글씨로 첫 제작… 청농 문관효씨, ‘훈민정음의 큰 빛’ 展
입력 2015-12-06 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