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석달 만에 잠적한 남편… 알고보니 8번째 결혼

입력 2015-12-06 21:40

혼인신고 3개월 만에 사라진 남편(45)이 A씨(38·여)에게 보내온 것은 이혼서류였다. “A씨가 가출했으니 이혼시켜 달라”는 적반하장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A씨는 2013년 초 인터넷에서 만난 남편의 뜻에 따라 그해 6월 혼인신고를 마쳤다. 세계적인 외국계 투자은행에 다닌다던 그였다. 결혼식 준비를 돕지 않고 신혼 거처 마련에 관심이 없어도, 남편이 바빠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결혼 이후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간암을 앓고 있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돈이 없다면 폭언을 했고 그해 9월부터는 아예 연락이 끊겼다.

소송 서류를 준비하던 A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남편에게는 5번의 이혼, 2번의 혼인무효 전력이 있었다. 남편의 이혼 요구에 맞서 A씨도 혼인무효를 청구했다. 1심은 남편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지만, A씨의 혼인무효 청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도 함께 혼인신고를 한 점이 문제가 됐다.

A씨는 포기하지 않고 남편의 과거를 계속 조사했다. 남편이 4년 전에도 인터넷으로 만난 여성과 한 달 만에 혼인신고를 한 뒤 1억8000만원을 빼앗아 잠적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은 그때는 외국계 증권사의 펀드매니저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혼인을 빙자해 돈을 뜯어내는 건 남편의 버릇이었다.

2심인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6일 “남편이 오로지 돈을 편취할 목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1심을 파기하고 A씨가 낸 혼인무효 청구를 받아들였다.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500만원도 인정됐다. A씨의 혼인신고는 남편의 의도를 모른 채 이뤄진 것이며 남편에겐 참다운 부부관계 의사가 없었다고 판단됐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