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도 삶의 일부가 된 베들레헴 검문소=장벽으로 둘러싸인 검문소는 흡사 거대한 감옥 같았다. 검문소까지 이어지는 100여 걸음 길이의 폭 1.5m 통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한껏 고조됐을 때도 생계를 위해 이스라엘로 향하는 팔레스타인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통근자들에게 빵과 커피 등을 파는 팔레스타인인 자드(39)는 “일찍 오는 이들은 새벽 2시부터 이곳에 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으로부터 소지품은 물론 신체 구석구석 검색을 받고서야 이스라엘로 넘어갈 수 있다.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는 마타(60)를 비롯해 이날 만난 팔레스타인 근로자들 대부분은 경비원이나 건설 현장의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서둘러 출근하기 위해 2m가 족히 넘는 담장을 훌쩍 넘어 새치기를 하는 이들도 보였다.
그나마 갈 수 있는 이들도 가족 등 신분 조회를 거쳐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은 이들이다. 담장 너머 복도의 대기자들에게 커피를 파는 모하메드(19)는 허가증이 없어 자신은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다. 2셰켈(약 600원)짜리 그의 커피에서는 ‘탄 맛’이 났다.
기자가 전날 이스라엘에서 빌린 렌터카로 팔레스타인쪽에서 이스라엘로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오전 7시쯤 예루살렘쪽 검문소 밖에서 만난 샤디 페라힌(24)은 새벽 3시쯤 집에서 나왔다고 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는 그는 예루살렘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 반을 가야 하는 텔아비브의 건설 현장으로 가는 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6남 1녀 중 장남인 그가 오후 3시까지 일하고 받는 일당은 100셰켈(3만원)이라고 했다.
샤디 같은 젊은이들을 한가득 태우고 출발하는 예루살렘 시내버스의 뒷모습에서 종교나 민족 갈등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차원의 ‘고달픈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봉쇄된 가자지구의 실업률이 40%대까지 치솟는 등 팔레스타인의 산업기반은 극도로 취약하다. 글로벌 시대에 필수적인 자체 공항조차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그렇게 이스라엘에 얹혀살듯 위태롭게 연명하고 있었다.
◇‘우후죽순’ 정착촌…팔레스타인 숨통 조르는 이스라엘=최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는 곳곳에 들어서는 유대인 정착촌들이 이 지역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정착촌에서 생산된 제품의 경우 표시를 의무화하도록 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국제사회 대부분이 유대인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합법적 영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군을 앞세워 막무가내로 정착촌을 확장하고 있다. 이미 정착촌 인구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0분의 1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멀리서 봐도 정착촌의 질서정연한 건물들은 구릉지 사이 듬성듬성 들어선 팔레스타인 마을과 구분됐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인 라말라에서 약 20㎞ 거리인 베들레헴까지 차로 달리는 동안만 3군데의 검문소와 네댓 군데의 정착촌을 볼 수 있었다. 아랍인들이 꺼리는 이스라엘 측 검문소가 있는 도로를 이용하면 30분이면 갈 거리를 검문소가 없는 도로로 돌아가자 1시간 반이 걸렸다.
도시 외곽의 간선도로에는 이스라엘군이 설치한 장벽들이 이미 여러 군데 설치돼 있었다. 현지 운전기사인 헤몬(50)은 “약속된 지역을 벗어나 정착촌을 추가로 만들고 장벽을 새로 만드는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어쨌거나 유대인들도 오랫동안 떠돌다 온 것 아니냐”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금처럼 장벽을 설치하는 데 돈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벽과 무기를 앞세운 ‘배제’가 아니라 ‘공존’을 강하게 원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베들레헴·예루살렘=글·사진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이-팔 긴장의 현장-르포] ‘반목’ 속에도 생계 위해 검문소 넘는 ‘팔레스타인’ 남성들
입력 2015-12-07 04:05 수정 2015-12-08 0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