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서 더 재미있어요. 다비드 포퍼의 ‘타란텔라’는 꾸밈 음이 많고 빨라서 연주할 때마다 포지션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려운 곡을 연주해 낼 때의 기쁨은, 어후∼ 최고죠.”
교복 차림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첼리스트 차지우(18·지적장애 3급)군의 목소리에 잔뜩 흥분이 묻어났다. “첼로 연습이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답변하는 모습은 ‘공부가 꽉 찬’ 첼리스트의 자세였다. 수줍게 인사를 나누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차군은 “세계적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같은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에서 최근 만난 차군이 첼리스트로서 첫걸음을 뗀 건 4년 전. 교회에서 재능 기부하던 첼로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차군의 어머니 국선영(46)씨는 걱정부터 앞섰다.
“지우처럼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뭔가를 배울 때, 과다 학습과 과잉 반복이 필요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부하기도 하죠. 그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고요.”
처음 3개월 동안은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재미도 못 붙이는 것 같아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괜히 첼로를 시켜서 스트레스만 더 받게 하는 건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 지우가 현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더라고요. 한 번 흥미를 느끼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첼로 활을 찾을 정도로 집중하게 되고 실력도 급성장했어요.”
2년 전 밀알첼로앙상블 ‘날개’의 단원이 되면서부터 차군의 첼로 실력은 도약을 거듭했다. 체계적인 레슨이 병아리 첼리스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밀알첼로앙상블은 밀알복지재단이 2008년부터 장애인들에 대한 음악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해오고 있는 곳이다. 특별레슨비와 장비구입비 등 현실적인 문턱을 낮춰줌으로써 장애인들이 음악가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차군은 매일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연습을 시작해 하루 3시간 이상 첼로와 한 몸이 된다.
“이제는 그냥 제 몸의 일부 같아요. 떨어져 있으면 허전해요.(웃음)”
4개의 현을 수만 번 누르고 떼었을 차군의 손끝에는 이미 지문 대신 굳은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지손가락 첫째 마디는 굳은살이 솟아올라 본래 크기의 1.5배는 돼 보였다. 높은 음역을 소화할 때 쓰는 ‘엄지 포지션’ 연습을 반복하면서 얻은 훈장이다.
고된 연습 끝에 얻은 열매도 수두룩하다. 밀알첼로앙상블은 올해 제8회 전국장애학생 음악콩쿠르 관현악부문 금상, 제9회 전국장애청소년 예술제 서양악기부문 장려상을 수상했다. 차군은 지난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2회 밀알콘서트’에서 솔로 첼리스트로서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을 연주해 3000여명의 관객에게 박수를 받았다.
차군은 “3층에 있는 관객들까지 일어나 박수를 쳐주는데 하늘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내려오는 것 같았다”며 그날의 감격을 전했다. 어머니에게는 차군의 수상 경력과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보다 더 큰 기쁨이 있다. 바로 첼로를 하면서 성장한 아들의 사회성과 신앙심이다.
“지우가 앙상블 단원들과 합주를 하면서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어요. 연주 전에 두 눈을 꼭 감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되죠.”
피아노 전공자였던 국씨는 몇 달 전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첼리스트로서 살아갈 아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지우가 첼로를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너무 오래 같이 있어서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지우 같은 아이들은 한 번 싫어하면 다시는 안 해요. 그걸 돌려놓는 것은 불가능하죠.(눈물) 학령기가 지난 장애인들에겐 예술분야 지원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요. 교육을 받지 않으면 능력이 퇴화되는 속도도 빠른데….”
차군은 갑작스레 눈물을 쏟은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이다 첼로 케이스를 열어젖혔다. 타란텔라가 울려 퍼졌다. 어머니는 발 박자를 맞추며 지우와 눈을 맞췄다. 아들의 연주를 바라보며 같이 현을 긋는 동작을 취할 때는 투명한 첼로를 안고 합주를 하는 듯했다.
차군은 18일 열리는 ‘밀알 정기연주회’를 위해 26명의 ‘날개’ 단원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별 연습이 있다며 첼로 케이스를 둘러메는 차군에게 “파이팅”하고 외치자 단원들을 향한 응원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날개’들 모두 파이팅!”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밀알첼로앙상블 ‘날개’ 단원 장애우 첼리스트 차지우군 “엄마, 첼로 실력만큼 내 신앙도 자랐어요”
입력 2015-12-06 19:15 수정 2015-12-08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