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고세욱] 경제효과 450조원의 추억

입력 2015-12-06 17:39

5년 전인 2010년 11월 11∼12일 서울에서 고작 이틀간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장밋빛 경제전망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해 9월 중순 삼성경제연구소는 G20으로 인한 경제 파급효과가 기업 홍보·수출증대 효과 등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21조5000억∼24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연구원은 10월 초 총 31조2747억원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20일도 채 안 돼 경제효과가 최대 10조원가량 뛰었다. 하지만 이는 애교 수준이었다.

무협 내 대전충남본부는 G20 회의가 열리기 4일 전 보고서에서 정상회의가 한국에 미칠 경제효과를 ‘450조8000억원’까지 격상시켰다. 여야가 지난 2일 합의한 2016년 국가예산(386조3997억원)보다도 64조여원이 더 많다. 이 전망을 두고 당시 “G20 회의를 두 번만 하면 전 국민이 놀고먹어도 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그해 6.5%였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2.7%(한국은행 전망)로,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2010년 10.2%에서 2014년 4.0%로 추락했다.

최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되자 역시나 정부와 각종 연구소들은 귀가 솔깃한 경제효과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FTA 발효 시 제조업 분야에서 1년차 수출 증가액은 약 1조5606억원, 향후 10년간 소비자 편익 146억 달러(약 16조8776억원)의 가치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15개국(지역 포함)과 체결한 FTA의 성장률, 고용제고 효과 등을 모두 합하면 미국 중국과 맞설 만한 경제 강대국이 됐어야 한다.

국제회의 개최나 국제경제협정 체결 시 우리나라의 관심과 기대는 유별난 편이다. 부존자원이 없어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는 특성을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고 국내외 경제실상과 동떨어진 분석력에서 나오는 전망 제시는 오히려 국민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1년 하반기 경제전망 참고자료를 통해 이듬해 한·미 FTA가 발효되면 최대 0.3% 포인트 성장률 추가상승 효과가 예상된다며 4%대 성장률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2년 우리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인 2.3%에 머물렀다.

한·중 FTA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었던 재계의 반발은 FTA가 경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 역설적 장면이다. 재계는 비준동의안 처리 직후 FTA 피해 대책으로 추진되는 1조원의 상생기금 조성에 대해 일종의 준조세라며 강력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각종 FTA를 체결하면서 재계가 전망한 업체들의 막대한 이득과 비교하면 10년간 1조원의 보전액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세계경기 침체로 FTA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재계가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고 있다”는 일각의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부분이다.

이미 세계 무역대국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 FTA나 국제회의가 얼마의 효과를 더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세계시장에 밀접하게 접근할수록 각국 경제침체의 타격을 좀 더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외부효과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했다. 우리 수출증가율이 2014년 이후 세계교역신장률을 밑도는 것은 FTA 체결 숫자가 여전히 적기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국제경제 이벤트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 소득정체, 부채증가라는 우리 경제의 약점 보완에 눈을 돌려야 한다. 450조원의 씁쓸한 경제효과 제시는 더 이상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고세욱 경제부 차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