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기록·통계·수학

입력 2015-12-06 17:41

카스파르 노이만이라는 성실한 목사가 17세기 말 폴란드 남서부의 도시 브로츠와프에 살았다. 그는 교회 관할 지역 신도들의 출산·세례·사망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는 1687년에서 1691년 사이 교회 기록을 집계해 이 지역 주민들의 출생과 사망 통계표를 만들었다. 통계표는 영국 왕립학회의 눈길을 끌었다. 브로츠와프는 런던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 있었는데, 인구 유출·입이 거의 없었다. 왕립학회는 이 통계표로 런던 시민의 사망률을 예측하고 싶었다.

헬리혜성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헬리가 나섰다. 그는 브로츠와프의 통계표로 나이에 따른 사망 확률을 계산했다. 인구의 절반이 33세가 되기 전에 사망하는 것으로 나왔다. 60세까지 사는 사람은 25%였다. 헬리는 이를 바탕으로 징집 가능한 장병 숫자와 이들에게 지급할 연금 총액 등을 계산해냈다.

당시에도 고아와 미망인을 위한 생명보험조합이나 성직자를 위한 공제조합 같은 초기 형태의 보험이 있었다. 매년 똑같은 돈을 내고 사망할 때 똑같은 보험금을 타는 방식이었다. 돈만 내는 젊은 사람은 불만이 많았다. 제임스 도도슨이라는 수학자가 헬리의 계산을 응용해 나이에 따라 공평한 보험료를 산출했다. 1762년 문을 연 에퀴터블생명보험은 브로츠와프의 기록, 헬리의 통계, 도도슨의 수학을 바탕으로 보험상품을 만들었다. 토지도 재산도 없이 런던으로 몰려왔던 가난한 노동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근대적 생명보험은 이렇게 탄생했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금융개혁 차원에서 보험사들이 정부 통제 없이 보험료 책정이나 보험상품 개발을 할 수 있게 규제를 풀었다. 보험사들은 기뻐한 게 아니라 비상이 걸렸다. 수학이나 통계 능력을 기르는 데 소홀히 하고 보험설계사의 영업력에만 기대왔기 때문이다. 몇 년 내 문 닫는 보험사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기초를 무시하고 돈벌이에만 몰두한 분야가 보험만은 아닐 것이다.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