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서명 후 반년을 끌었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돼 발효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막판 여야 협상과정에서 느닷없이 ‘상생기금’ 1조원 카드를 꺼냈고, 학계와 지방자치단체들은 한·중 FTA 대응 방안 마련에 부산하다. 정작 협정 상대국인 중국 경제의 FTA 실효성과 효과적인 접근 방법에 대한 정교한 논의는 별로 없고, 여야나 지자체 간에 총선 대비 명분 쌓기나 형식적 ‘행사’가 대부분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뜬금없는 모호한 대책이다. 한·중 FTA로 이익을 보는 기업의 출연금을 피해 농어민에게 10년 동안 1조원 규모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FTA로 인한 직간접 이익을 계산하기란 불가능하며, 심지어 출연금을 내는 기업은 농어촌을 희생양으로 돈 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 설사 출연금을 거두더라도 피해 농어민에게 제대로 돌아갈 것인지, 한국 농어촌 경제의 구조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아무리 봐도 ‘상생기금’은 총선을 앞둔 정부와 여야의 ‘상생’용 합작품이다. ‘안방’에서의 정치적 꼼수보다는 FTA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절실하다. 사실 중국 역시 농어업 부문이 취약한 나라다. 중국 내 주요 곡물 가격이 국제시장 가격보다 40% 이상 높고, 식품 안전과 품종 기술은 물론 경영방식 또한 낙후됐다. 한국은 겨우 ‘김치 수출’을 강조하거나 일부 농산물을 협상에서 빼줄 것을 애원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벗어나 중국에 우리의 농업투자를 위한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강공책을 구사했어야 한다. 중국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다.
중국은 ‘양파’ 경제다. 법규와 제도가 중앙과 각급 지방정부 간에 양파껍질처럼 다층구조로 돼 있어 한국의 ‘유리지갑’형 경제와는 다르다. 국가 차원의 FTA가 각각 상황이 다른 지역 경제에 대해 투명한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이유다. 중국에는 중앙정부의 ‘정책’이 있다면 이로부터 지방정부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대책’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 기업이 빠지기 쉬운 늪이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경제는 매년 적게 잡아 1만건 이상의 경제관련 법규를 개정 또는 신설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의해 새로운 법규를 중문과 영문으로 공표하지만, 이 자료들은 워낙 방대하고 분산돼 있어 우리 기업이 쉽게 접할 수 없다. 한·중 FTA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중소기업이 중국의 관련 법규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한글 통합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시간은 없고 할 일은 많지만, 한·중 FTA 발효에 대응한다는 국내 학계와 지자체의 논의는 공허하다. 이런저런 품목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시간에 중국 경제는 이미 저만큼 달아나 우리를 역공한다. 외자나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중국 공산품의 비교우위는 몇 달 간격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중국 경제가 그렇게도 빨리 쫓아오는 이유다.
전략에 따라 승패가 갈릴 상황에서 향후 몇 년간 국내총생산(GDP)가 몇 % 증가한다는 단순한 계산법이 의미가 있을까. 중국 국내 유통구조의 방어벽과 수입품의 과도한 가격 책정 관행을 무시하고, 우리 밥솥과 화장품 등 최종 소비재 수출이 급증할 것이라는 판단이 옳은가. 각 지자체는 중국에 어떻게 진출하여 중국 경제의 ‘발전 공간’을 활용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기업의 현실적 수요는 외면하고, 중국자본 유치용 ‘지역개발’로 업적 부풀리기에 초점을 맞춘다. 안 그래도 비좁은 우리 땅을 탐욕스러운 중국기업에 무분별하게 내줘서 한국 경제를 ‘다운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것인가. 중국을 바로 보고, ‘이불 속’ 논의는 지양하자.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한반도포커스-오승렬] 한·중 FTA 공허한 대응 말아야
입력 2015-12-06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