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후배 여성들에게 줄곧 해 온 말

입력 2015-12-06 17:46

후배 여성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줄곧 해 온 말이기도 하다. ‘첫째, 외모에 기대지 말라. 둘째, 동정심에 기대지 말라. 셋째, 특혜에 기대지 말라.’ 한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되지 말고 속 빈 강정 되지 말자는 뜻이다.

더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칫 여성을 외모의 잣대로 평가하는 분위기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말라. 둘째, 자칫 ‘배려’라는 말로 일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역차별에 당장 편하다고 넘어가지 말라. 셋째, 조금 자랐다 싶으면 주목해주거나 높은 자리로 발탁해 꽃꽂이로 쓰는 특혜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

이 세 가지, ‘외양·배려·주목’의 역학은 일하는 여성에게 치명적인 유혹이자 아주 뿌리 깊은 차별로부터 나온 유혹이다. 일하는 여성 개인은 물론 일하는 여성 전체의 진정한 발전을 막고, 우리 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데 절대적인 방해물이다.

내가 이런 소신을 밝히면 요즘 후배 여성들은 “원론에 완전 찬성해요! 그런데 살아남기가 너무 힘이 들어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질 않아요!”라며 비명을 지른다. 외모 지상주의로 사회가 치닫는 데서 받는 스트레스, 노동 조건과 육아 조건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데서 받는 스트레스, 게다가 아예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활약하는 저 어떤 여성들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훨씬 더 깨어 있는데, 사회는 훨씬 더 차별적, 반칙 경쟁적, 특혜적이 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숨이 나온다. 적어도 내가 자라오고 일해 왔던 환경은 이런 합당한 원칙이 확산되고 발산될 수 있다는 믿음이라도 있었는데, 어쩌다가 우리 사회가 이렇게 원칙이 무너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여성이 대통령인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후배 여성들이여, 부디 깃발을 높이 들자. 우리의 인간성 깃발을, 역량의 깃발을, 정의를 지키는 깃발을! 살아남자. 그리고 우리가 사회의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올라섰을 때 우리의 원칙을 잊지 말고 그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