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판다허거(Panda Hugger·친중파)’란 말이 화제였다. 오랫동안 미 국무부의 중국분석가였으며 현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 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마이클 필즈베리가 쓴 ‘100년의 마라톤’ 때문이었다.
‘미국을 대신해 글로벌 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 비밀전략’이란 부제가 붙은 그 책에서 필즈베리는 자신을 비롯한 미국의 판다허거들이 그동안 사실상 철저하게 중국의 전략에 놀아났다고 고백했다. 중국은 그들을 이용해 철저하게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분석이다. 노력의 종착점은 1949년 중국공산당 주도의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 지 100년째 되는 2049년. 장구한 중국의 노력을 필즈베리는 ‘100년의 마라톤’이라고 불렀다.
필즈베리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1)냉전기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을 키웠는데 소련 붕괴로 미·중 관계는 시들해졌다. 2)탈냉전과 함께 중국의 본격적인 미·중 관계회복 로비가 시작됐다. 3)로비는 성공했고 양국 관계는 회복됐다. 4)로비과정에서 탄생한 게 바로 판다허거다. 5)그간 목표를 위해 발톱을 숨긴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이 주효했다.
이어 그는 최근 부쩍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기는 하지만 100년의 마라톤은 치밀하고 집요하게 진행 중이라고 분석한다. 이렇게 보면 남중국해에서 미·중 간 군사충돌 우려도 지나친 것일 수 있겠다. 중국이 100년의 마라톤을 위해 다시 몸을 낮추는 신(新)도광양회를 고수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달 30일 국제통화기금(IMF)이 특별인출권(SDR) 구성통화에 위안화를 포함시킨 결정에도 미국의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의 부상을 경계해야 할 미국이 되레 파운드, 엔을 제치고 달러, 유로에 이어 위안화를 제3의 국제통화 반열에 올리고 세계경제의 축으로 거듭 치켜세우는 데 앞장선 격이 아닌가.
어쩌면 미국은 중국의 신도광양회 전략을 간파하고 중국을 아예 글로벌 무대로 끌어내 국제사회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쪽을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미·중의 샅바싸움은 앞으로 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겠으나 나는 미래를 준비해 온 중국의 장기전략 그 자체가 훨씬 더 관심이 간다. 한·중·일 3국 중 장기 비전에 손놓고 있는 건 우리뿐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탓이다.
일본의 상황도 그렇다. 지난 9월 출간된 필즈베리의 일본어판 제목은 ‘China 2049-비밀리에 수행되는 세계패권 100년 전략’이었다. 중국위협론을 강조해온 일본사회의 긴장감이 엿보이는 제목이다. 어떻든 미래를 내다보려는 절절함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은 이미 2012년 ‘일본재생전략’을 발표했었다. 초고령사회, 흔들리는 복지 등을 비롯한 후기 산업사회의 문제들을 그 어떤 선진국보다 먼저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른바 ‘문제군(群) 가득한 프런티어국가’의 대응전략을 밝힌 것이다. 비록 그해 말 2차 아베정권 탄생과 함께 재생전략은 군사대국·헌법해석 개악 쪽으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아쉽게도 초점이 흐려졌지만 당초 의도만큼은 눈여겨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중·일 양국이 미래를 뜨겁게 바라보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가. 극히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다투는 정치권, 단기 경제동향에만 골몰하는 정부, 통일론엔 구체성도 안 보이고 전문가에게 맡기면 될 역사기술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통령, 서민들의 팍팍해진 삶에 대한 불만을 귀담아듣기보다 폭력성 유무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
광복 70년을 보내는 우리에게 광복 100주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연 ‘Korea 2045 구상’은 있기나 하나. 주변국들은 이미 저만치 달려가는데 우린 대체 뭘 하고 있나.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Korea 2045 구상’은 있는가
입력 2015-12-06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