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하루 만에 사법시험(이하 사시) 폐지 4년 유예 방침은 최종 입장이 아니라며 법무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은 ‘집단 자퇴’도 불사하겠다며 격렬하게 반발하는 반면, 사시 폐지 반대론자들은 법무부가 ‘유예’보다 ‘존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사태의 이면에는 역시 ‘돈의 논리’가 숨어 있다.
사시 출신 법조인과 변호사시험(이하 변시) 법조인을 직관적으로 구분하게 만드는 수치는 합격률이다. 1963년부터 시행된 사시의 합격률은 2.94%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시 합격자들은 법조인이 됐다. 반면 총 4번 치러진 변시 합격률은 평균 71.27%다. 제도 시행 초기이고 재수생이 누적되는 점을 감안하면 합격률은 더 떨어지겠지만 사시 합격률에 견줄 수 없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대다수 사시 출신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법조인이 된 변시 출신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길 거부한다. 더구나 매년 1500명 안팎의 변시 출신 법조인이 변호사 업계로 쏟아져 나오면서 업계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졌다.
사시 출신 법조인들의 사시 폐지 반대론에는 2.94% 합격률이 담보하는 ‘프리미엄’을 유지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4일 “내가 있는 로펌의 경우 같이 입사해도 변시 출신 변호사가 받는 임금은 사시 출신의 60% 정도”라고 귀띔했다.
사시 출신들이 사시 존치를 통해 변시 출신과 차별성을 두려는 시도는 현재 변호사단체들의 공약을 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과 김한규 서울변호사회장은 모두 사시 존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수년 안에 변시 출신 변호사 수가 사시 출신 변호사 수를 앞지르는 상황이 오기 전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후보자에 사시 출신의 표가 집중된 것으로 분석된다. 나승철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공청회에서 “로스쿨과 사시의 경쟁으로 국민이 더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시 출신들은 사시의 존재 자체가 로스쿨-변시 제도 안착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본다. 현격한 합격률 차이는 좁혀질 여지가 없고, 자칫 ‘2.94% 시험을 통과한 우수한 사시출신’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오수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장은 공청회에서 “사시가 존치될 경우 로스쿨생들의 사시 준비를 막을 수 없고, 애초 로스쿨을 도입한 취지 자체가 무색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법무부의 사시 폐지 유예 입장에 로스쿨 학생·교수들이 집단 반발한 것도 그런 위기의식 때문이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 480명 중 464명이 이날 자퇴서를 제출했다. 전국 25개 로스쿨 학생회가 모두 학사일정 전면 거부를 결의하고 ‘집단 자퇴’ 배수진을 쳤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회는 “2007년 사시 폐지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는데 이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에 분노를 느끼고, 그 합의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집단행동에 나서게 됐다”고 밝혔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도 긴급총회를 열고 로스쿨 교수들의 사시 및 변시 출제 거부 방침을 정했다. 또 법무부가 주관하는 모든 업무에 협조하지 않기로 의결했다.
정현수 홍석호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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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04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