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소년 싼윈의 삶은 고단하다. 이른 아침부터 과일을 팔기 위해 온 동네를 헤매고 오후에는 건설현장에서 목재를 나른다. 온종일 일하면 1500챠트(한화 1500원)를 번다.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날은 손에 꼽는다. 학교를 그만둔 지는 이미 오래됐다. 부모 역시 일용직 노동자로 온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오물이 흐르는 강 위에 지어진 나무집은 위태롭기만 하다. 희망이라는 꿈을 꿀 여력조차 없는 현실에 소년은 지쳐만 갔다. 싼윈은 미얀마 만달레이시의 미야난다르 빈민촌에 산다.
지난달 23일 국제구호개발NGO 월드비전의 모니터링 방문단과 이곳을 찾았다. 미야난다르는 만달레이시의 32개 행정구역 중 가장 넓은 지역이다. 급격히 도시화 되며 농지를 잃은 주민들은 건축·벌목 현장의 저임금 일용노동자로 전락했다. 학교 도로 보건소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근 지역 주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빈민은 빠르게 늘어났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이와다리강에 늘어선 움막과 나무집들이 빈민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월드비전은 2002년부터 이곳에서 교육과 보건·위생, 주민역량강화 등을 골자로 한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이 곧 희망이다=싼윈을 만난 곳은 월드비전이 미야난다르 냥궤 마을에 세운 교육센터. 빈민 어린이·청소년들이 쉬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싼윈은 6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비정규교육’을 받고 있다. 말 그대로 가정형편 탓에 공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국어(미얀마어)와 수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춤과 노래, 미술 활동 등 예체능 교육도 한다. 20여명의 빈민 청소년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틈날 때마다 여기에 옵니다. 공부를 하면서 다시 꿈을 꾸게 됐어요.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서로 격려합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싼윈의 포부는 당찼다.
지역사회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 마을마다 주민들이 마을위원회(CBO)를 구성해 봉사자로 참여하는 등 월드비전의 사업을 돕는다. 냥궤의 CBO 멤버인 유텟(67)씨는 “어른들의 책임으로 생긴 불안한 정치 상황과 양극화, 그로 인한 가난 탓에 어린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며 “다음세대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희망을 키워주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미얀마는 무상교육을 표방하지만 입학비와 기자재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하기에 빈곤층은 학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미얀마 아동의 평균 교육기간은 9.4년이다. 초등학교 등록률은 90%이지만 이수율은 70%에 불과하다.
국내 후원자들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월드비전 제주지부의 후원으로 최근 미야난다르 본타우토 지역에 개소한 영·유아개발센터에서는 50여명의 어린이들이 기초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 9월에 미야난다르 민데이낀에 세워진 28번가 초등학교 역시 한국후원자의 후원금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미야난다르 지역개발사업장(ADP) 나마따 매니저는 “월드비전의 지원으로 지역 영·유아개발센터 5곳과 탁아소 1곳, 마을 학교 4곳이 세워졌다”며 “이 시설에서 지난해에만 591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았고 부모 2289명이 아동권리 및 복지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범죄와 질병예방에 총력=“정말 끔찍했어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지난달 24일 미야난다르 모처에서 만난 아우예(가명·34·여)씨는 중국으로 인신매매를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2003년 중국과 인접한 국경으로 갔다. 거기서 만난 브로커에 의해 중국 산둥으로 팔려갔고, 중국인 남성과 강제혼인을 했다.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구타를 당했다. 결국 아들까지 낳고 6년간을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아우예씨는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고 결국 아들과 함께 7년여 만에 그리운 고향땅 미얀마로 돌아왔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자괴감에 빠졌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기에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어요.” 삶을 포기하려고 생각했을 때 월드비전이 제공하는 심리상담서비스를 접했다. “제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속적으로 상담을 받으며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난 1년간 미야난다르에서만 8명의 여성이 사라졌다. 10대 피해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또 다른 문제는 많은 피해자가 성산업에 유입되고 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대물림되기도 한다. 현재 미얀마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 수는 약 40만명에 달한다. 나마따 매니저는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야난다르 ADP는 인신매매 예방교육과 피해자 보호, 돌봄, 에이즈 예방교육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립을 넘어선 나눔이 목표=모니터링 방문단과 동행한 정영식(서울 동천교회) 목사는 지난달 25일 미야난다르 다우나바우 지역센터에서 결연아동인 수산(6·여)과 만났다. 한국에서 온 후원자를 만나자 어린 소녀는 수줍은 웃음을 보였다. 수산의 아버지 다우안(40)씨는 하루 14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잡지와 신문을 판다. 그가 좋아하던 술을 끊고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 시작한 것은 딸이 정 목사로부터 후원을 받게 되면서부터.
다우안씨는 “얼굴도 모르는데 지속적으로 후원해 준 덕분에 수산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며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가족을 보살피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수산의 가족에게 준비해간 인형과 책가방 공책 스케치북 샌들 우비 등을 전달하며 “꿈을 잃지 말라”고 권면했다.
미야난다르 ADP에는 10대 후반과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유스(youth) 공동체’가 있다. 월드비전의 아동결연사업의 혜택을 받은 이들은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눔’을 실천한다. 공동체는 최근에 거리모금을 하고 틈틈이 월급의 일부를 모아 인신매매 피해자들, 내전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성금 300만 챠트를 기부했다. 2008년 태풍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덮쳤을 때는 복구 활동에도 나섰다. 그룹의 리더인 날링(21)씨는 “나보다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어느 곳에나 있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체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만달레이(미얀마)=글·사진 이사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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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기적] (5) 미얀마 빈민촌 미야난다르 사업장
입력 2015-12-06 19:36 수정 2015-12-06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