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니 손님이 뜸하네요. 왠지 더 추운 것 같아요.” 사촌 형제는 영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동생 김인순(28)씨는 찬바람에 얼어버린 손을 호호 불면서 추로스(막대 모양의 튀김과자) 반죽을 빚었다. 형 김민순(31)씨는 새로 만든 가격표를 붙이며 트럭을 꾸미는 데 여념이 없었다. 형제는 지난 8월 추첨을 통해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 1호 푸드트럭’ 영업권을 거머쥐었다(국민일보 8월 19일자 10면 참고). 두 달 준비 끝에 푸드트럭 ‘한 평의 꿈 스위트 추로스’가 지난 10월 25일 양천구 서서울호수공원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이제 한 달 열흘이 지났다.
권리금 없는 청년창업…글쎄
개업 한 달 만에 형제의 푸드트럭은 공원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공원에 들른 이들은 푸드트럭 앞에 서서 추로스와 커피로 허기를 달랬다. 맛도 합격점을 받았다. 회사 동료들과 공원 산책에 나선 김민수(27)씨는 4일 “푸드트럭 추로스는 처음 맛보는데 여느 카페 못지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제는 공원사업소에 장소사용료로 연간 6만8700원만 낸다. 트럭을 구입하고 개조하는 데 2000만원쯤 들긴 했지만 권리금이나 임대료 부담이 전혀 없다. 목돈이 없어 창업을 망설이는 청년층에 푸드트럭은 새로운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푸드트럭을 합법화해 일자리 6000개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말뿐이었다. 기존 상권의 반발을 무마할 묘수를 찾지 못했다. ‘누구는 권리금·임대료 다 내는데 누구는 공짜로 장사한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상인들과의 마찰을 피해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지정하다 보니 허가된 푸드트럭은 전국 70대에 그쳤다.
형제는 푸드트럭 창업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운영 노하우를 전해줄 사회적기업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운 좋게 기회를 잡은 만큼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지금처럼 영업허가 자체가 막혀 있는 상황에선 형제의 바람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사실상 ‘노점’ 신세, 해법 없나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형제는 시름에 잠겼다.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준비한 반죽이 동이 날 정도로 줄지어 손님이 찾아오곤 했는데 추워지니 발길이 뜸해졌다. 비나 눈이라도 내리면 공원에 인적이 드물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민순씨는 “미국처럼 좀 더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팔 수 있으면 좋겠다”며 “손님이 없으면 찾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불가능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손님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도록 네 바퀴가 달려 있지만, 형제의 푸드트럭은 종일 공원 내 가로 5m 세로 2m 지정장소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 현재로선 노점과 별로 다를 게 없다. 트럭 개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수의 장소에 영업허가를 받으면 그나마 옮겨 다니며 장사할 수 있을 텐데, 영업장소가 거의 없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법은 푸드트럭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늘리는 것이다. 지난 10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푸드트럭 영업장소가 늘어날 가능성이 생겼다. 기존의 공원, 체육시설, 하천부지 외에도 관공서, 공립학교, 박물관, 미술관 등 공공장소에서도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해졌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기존 상권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공생할 수 있도록 푸드트럭을 명물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신훈 기자 zorba@kmib.co.kr
서울 1호 찾아가보니… ‘희망’ 실은 푸드트럭 ‘노점’ 탈피가 관건
입력 2015-12-04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