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전쟁범죄를 다룬 연극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오른다. 오키나와 문제를 소재로 한 일본 연극 ‘나무 위의 군대’(12월 19일∼2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한국 연극 ‘하나코’(12월 24일∼1월 10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다.
‘나무 위의 군대’는 대학로의 대표적인 연극 브랜드로 자리 잡은 연극열전6의 개막작이다. 일본의 국민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1934∼2010)의 원안을 가지고 후배 극작가 호라이 류타가 완성해 2013년 초연됐다.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오키나와에서 미군의 공격을 피해 올라간 나무 위에서 종전을 모른 채 2년을 숨어 지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연극은 전쟁에 질 것을 알고 있었던 본토 출신 분대장과 자신의 고향인 섬을 지키기 위해 입대한 신병으로 설정된 두 군인의 모습을 통해 국가주의가 일으킨 전쟁의 무의미함,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존엄성,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 등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코믹한 것이 큰 장점이다.
19세기 일본에 병합된 오키나와는 2차대전 막바지에 일본에서 유일한 육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했다. 특히 일본군은 옥쇄 작전을 펼치며 주민들에게 미군의 총알받이로 나서거나 자결을 강요했다. 지금도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오키나와에 주일미군 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다.
생전에 반전(反戰) 작가로 유명했던 이노우에는 2차대전을 소재로 전쟁을 망각한 일본인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는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그는 두 군인 이야기를 1985년 처음 접한 뒤 오랫동안 구상해 왔으나 집필 중 타계했다. 이후 작품의 미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잇따르자 그가 이끌던 극단 고마츠좌에서 호라이에게 희곡을 의뢰했다. 호라이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지만 이노우에의 유지를 충실히 이어받은 희곡을 썼다는 칭찬을 들었다. 한국 공연은 ‘상주국수집’ ‘비밀경찰’ ‘게공선’ 등의 연출가 강량원이 맡았다.
2015년도 연극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 선정작인 ‘하나코’는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했다. 그동안 위안부를 다룬 작품이 적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해무’ ‘길삼봉뎐’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김민정이 쓰고, ‘서안화차’ ‘레이디 맥베스’ ‘장화홍련’ 등 문제작들을 쏟아낸 한태숙이 연출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작품 제목 ‘하나코’는 위안부로 끌려가 부모가 지어준 꽃분이란 이름 대신 일본 이름 하나코로 살았던 소녀의 짓밟힌 삶을 상징한다. 주인공 한분이 할머니는 70여 년 전 캄보디아에서 함께 위안부 생활을 하다 헤어져 소식이 끊긴 동생을 찾기 위해 위안부 등록을 한다. 그리고 캄보디아에 살면서 자신이 조선인이고 위안부 출신이라 주장하며 친언니를 찾겠다고 나선 렌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렌 할머니는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름 등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작품은 1997년 한국에 소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던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훈 할머니는 한국말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 등 신원과 가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 사항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기억하는 것이라곤 고향 동네 이름과 언니가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군대를 이용해 국가가 저지른 성폭력 및 인권유린 사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차대전 종전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정치권은 위안부를 인정하기는커녕 툭하면 매춘부라며 모욕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 카드로 위안부 문제를 이용하면서도 막상 피해자에 대한 지원 등은 인색하다.
이번 작품은 일본에 대한 감상적 분노나 피해자를 향한 동정적 시선이 주류를 이루던 기존 연극에서 한걸음 나아가 위안부 문제를 여성학자의 탐구적 시선과 언론인의 취재 과정을 통해 좀 더 객관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아울러 본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냉담하게 접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오키나와… 위안부 비극… 실화 소재 韓·日 연극 무대에
입력 2015-12-06 18:51 수정 2015-12-06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