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행진을 계속한 시간이 어느덧 12월에 도착했다. 한 해를 마감한다는 느낌이, 떨어진 낙엽으로 휑한 나무만큼이나 적적해지는 시기이다. 그래서인가 상록수의 푸르름과 잎들의 온전함이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듯하다. 아마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듯한 이들의 고고한 생태적 특성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푸른나무의 대명사격인 소나무, 전나무와 함께 대나무도 겨울철에 푸른 잎을 지니는 여러해살이 식물종이다. 분류학적으로 벼와 사촌지간인 대나무는 벼목 벼과 식물로서 우리나라에는 19개종이 서식한다. 이들 대부분 우리 실생활과 밀접하여 왕대, 죽순대, 솜대, 오죽, 갓대, 조릿대 등 친숙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자라는 대나무인 왕대는 높이 20∼30m, 지름 30㎝까지 자라기도 한다. 대나무의 번식과 생장방식은 독특하게도 땅속줄기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땅속에서 옆으로 뻗은 마디에서 뿌리와 순을 틔워 자연번식한다. 좁고 기다란 잎들은 마디에 위치하여 영양분을 만들고 이를 다시 뿌리로 내려 보내 번식을 지속시킨다.
그렇기에 이들의 번식은 꽃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필 때에는 밀생하는 모든 대나무가 일제히 개화하는 독특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더욱 신비로운 것은 번식과 무관한 개화는 돌연변이적으로 나타나고 꽃을 피운 후 모든 대나무가 고사한다는 점이다. 이를 ‘자연고’ 혹은 ‘개화병’이라 하는데 정확한 원인에 대한 과학적 규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란·국·죽 사군자 중 겨울을 의미하는 대나무는 곧게 자라는 특성으로 지조를 상징하고, ‘대쪽같은 기질’은 절개를 의미함은 잘 알려져 있다. 비록 일반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때를 기다려 화려하게 피고 떠날 때 모든 것을 정리하는 자연고의 생태 특성은 무엇보다도 군자의 절제된 삶에 비견되었을 것이다. 가치관 충돌로 인한 소모적인 대립으로 겨울 한복판에 꼼짝 않고 멈춘 듯한 요즘 우리 사회. 긴 호흡의 여유와 절제의 미학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황죽 대금의 청울림이 그윽한 고수의 대금산조 ‘다스름’이 그리운 초겨울이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사이언스 토크] 대나무 그리고 절제
입력 2015-12-04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