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찰의 2차 민중총궐기 집회 금지 처분은 부당”

입력 2015-12-03 22:08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이 3일 경찰청을 방문해 강신명 경찰청장과 면담하고 있다. 심 대표는 12·5집회에 대한 ‘평화적 시위 보장’을 요청했다. 연합뉴스
법원이 5일로 예고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금지한 경찰 처분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불법·폭력시위나 심각한 교통체증이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집회 개최 자체를 불허하는 것은 ‘최종적 수단’이 돼야 한다고 봤다. 경찰은 “법원 결정에 이견은 있지만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12·5집회는 일단 합법 테두리 안에서 열리게 됐다.



法 “공공에 직접적 위협 단정 못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김정숙)는 3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서울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 금지통고 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본안 소송 선고가 날 때까지 경찰의 집회금지 처분은 정지됐다. 집회 개최의 법적 문제가 없어진 것이다.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려면 세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①본안 판결을 기다리지 못할 긴급한 사정이 있어야 하고 ②(본안 사건) 승소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③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어야 한다. 재판부는 세 가지 다 충족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경찰이 집회금지 근거로 삼은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5조에 대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민주노총이 주된 세력이었다고 해도 (범대위에는) 총 118개 단체가 가입해 있다”며 “이번 집회도 집단 폭행·손괴 등이 명백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 주장에 따르면 민주노총이 주최하거나 참석하는 모든 집회는 앞으로 허가될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재판부는 경찰이 댄 ‘극심한 교통체증 우려’(집시법 12조)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최 측이 질서유지인 300명을 두고 도로 행진을 하겠다고 신고했고, 행진은 당일 오후 4∼6시 2시간 동안만 진행될 예정”이라며 “이런 사정만으론 주변 교통에 심각한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집회 금지 효력을 정지시킨다 해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원천불허’ 제동걸린 경찰, 대책은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 “법원 결정은 경찰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멋대로 제한하고 억압해 왔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도 범대위 일원으로 5일 집회에 참가한다. 구체적 참가 방식은 4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논의한 뒤 범대위 측과 최종 협의키로 했다. 범대위 참가 단체들은 법원 결정 직후 모여 집회 진행 방식 등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

법원 결정에 따라 범대위가 다시 집회 신고를 낼 필요는 없다. 이들은 5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연 뒤 대학로 서울대병원 앞까지 약 3.5㎞를 2개 차로로 행진할 계획이다. 행진 때는 질서유지인 300명을 두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지킴이단 20명을 현장에 배치할 예정이다. 이들은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때도 비공식적으로 현장에 나가 자료를 수집했다.

이 집회와 별개로 오후 3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는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화제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주최로 열린다. 서울시는 지난달 이들에게 광장 사용 신청을 받고 허가했다. 전농 입장에서는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모두 열린 셈이다.

서울경찰청은 대책회의 후 입장 자료를 내고 “본안 소송에서는 공공 안녕과 질서를 고려한 경찰의 입장이 최대한 인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법원 결정 이유에 ‘(주최 측이) 이번 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점’이 반영된 만큼 5일 집회는 준법으로 개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저들이 주장하는 평화집회는 폭력만 없으면 된다는 거지만 우리가 말하는 ‘준법’은 사전에 신고한 내용대로만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원천 금지하려던 집회가 열리게 된 만큼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태세다. ‘준법’을 강조한 것처럼 참가자가 직접 폭력을 휘두르지 않더라도 질서유지선을 넘거나 신고된 행진 경로에서 벗어나면 즉시 연행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충돌이 발생할 경우 과격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농 측 문화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 성격을 띠면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범대위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 행진을 하다 전농 측 행사 장소인 광화문광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할 수도 있다. 같은 서울광장에서는 퇴직 경찰관 이익단체인 경우회가 ‘불법 폭력 시위 규탄 제4차 국민대회’를 연다.

양민철 강창욱 박세환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