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김지방] 대출 옥죄기, 또 서민만 희생양

입력 2015-12-03 21:07

변명만 있고 반성은 없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가계대출을 까다롭게 하는 이른바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의 골격을 밝혔다. 기자들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게 불과 1년여 전인데 이제 와서 대출을 줄이라고 하면 빚내서 집샀던 서민들은 금융절벽에 처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1년 전 대책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였다”고 임 위원장은 답했다.

“2012년의 주택 거래량이 지금의 절반에 가까웠다. 집이 안 팔려 서민들이 궁핍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화 조치를 했다. 다행히 거래량도 회복됐고 과열 우려까지 있다. 실제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줬다. 이런 것은 정상화 과정이지 투기를 불러일으키거나 한 것이 아니다.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 부채가 급증했다. 그래서 상환 능력 내 갚는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는 거다.”

서민을 위해 규제를 풀었고, 서민을 위해 규제한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서민들이 빚내서 집을 산 덕분에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됐는데 이젠 금리를 올려야 하니 그들에게 빚 갚을 능력이 있느냐고 따지겠다는 게 더 정확한 묘사가 아닐까. 서민을 경제의 희생양으로 삼은 셈이다.

사실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최 부총리가 지난해 7월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부동산 시장의 낡은 규제들을 조속히 혁파해야 한다”며 빚을 더 내도록 빗장을 풀었다. 그때부터 사태는 예견됐다. 최 부총리 발언 이후 가계대출이 110조원이 늘어나 현재 1200조원에 육박하면서 우리 경제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정부는 여신심사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겨울옷을 다시 꺼냈다. 하지만 빚 갚을 능력 없는 서민은 꺼내 입을 옷이 없다.

최 부총리가 내년 총선을 위해 떠나면 후임자로 임 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혹 청문회에 선다면 그때는 “여름인 줄 알았는데 겨울이었다”고 고백해야 한다. 김지방 경제부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