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시민단체 12·5시위는 차명집회” 불허… “1차 주도단체가 불법 선동 준법 집회 MOU도 거부”

입력 2015-12-03 19:14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3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의 경찰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온건 성향 시민단체들의 5일 집회 신고에도 금지 통고를 내렸다. 경찰은 이 집회 신고를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위해 주최만 바꾼 ‘차명 신고’로 봤다. 준법집회 양해각서(MOU) 거부 등을 불허 이유로 들었다. 진보 진영은 문화제 개최 형식으로 서울시에서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를 받으며 우회로를 찾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3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신고한 ‘민주회복, 민생 살리기 및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 범국민대회’에 금지 통고를 내렸다. 흥사단과 YMCA 등이 소속된 연대회의는 5일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대학로까지 행진할 계획이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집회 주체·목적·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 2차 민중총궐기 집회의 차명집회라고 판단된다. MOU 체결도 거부해 준법집회를 담보할 수 없다”고 금지 통고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집회 신고 내용이 SNS 등을 통해 홍보 중인 2차 민중총궐기 대회의 시간·장소 등과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찰은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1차 대회 주도 단체들이 불법시위를 선동하고 있다”며 “5일 집회가 개최될 경우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히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날 서울광장에서 퇴직 경찰관 단체인 경우회가 ‘불법 폭력 시위 규탄 제4차 국민대회’를 열 예정이어서 연대회의 측 집회를 허용하면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도 집회 금지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집회 금지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연대회의를 구성한 단체는 YMCA와 흥사단 등 온건 성향 시민단체다. 민주노총 등 1차 대회 주최 단체와 조계종 등 종교계도 평화집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이 언급한 준법집회 MOU는 강제 사항이 아니다. 이 협약서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정부가 평화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해 내놓은 대책 중 하나였다. 집회 주최 측은 준법·평화집회를, 경찰은 평화적 집회와 참가자 보호를 각각 약속하는 내용이 담긴다.

염형철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이런 것(MOU)을 남기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례가 있다. (시민단체연합 성격의) 우리 같은 단체가 선례가 돼 가이드라인으로 고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거절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헌법학자는 “과거 집회에 폭력이 일부 있었다고 해서 다음 집회를 금지할 수는 없다”며 “집회 주최 측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 집회를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헌법재판소에서도 일관되게 집회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고 있는 추세”라며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금지 통고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전농은 5일 오후 3시 광화문광장에서 지난달 농민 백남기씨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화제를 열기로 하고 서울시에 광장 사용 신청서를 내 사용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행사 도중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로 변질되면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강창욱 박세환 심희정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