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민태원] ‘재활 유목민’ 방치할 건가

입력 2015-12-03 18:07

얼마 전 지인의 아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50대 초반인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학병원에서 언어와 신체 재활치료를 받는데, 병원 측 요구로 6주 만에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는 것. 그런데 옮긴 병원에서도 한 달 남짓 만에 퇴원을 종용해 지금 세 번째 병원을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남편이 재활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조기에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도 한 곳에서 집중치료를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다. 거기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하고 간병인을 다시 구해야 하는 불편과 경제적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하소연했다.

지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뇌졸중이나 교통사고, 외상 등으로 장애를 입어 입원치료를 받은 적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을 일이다. 이로 인해 ‘재활 유목민’이나 ‘재활 난민’이란 말이 생겨났다.

현행 건강보험 심사기준은 대학병원에서 수술 등 급성기 치료를 받고 1∼2개월 지나면 퇴원해야 한다.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수가(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진료 대가)를 깎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불이익을 보지 않기 위해 환자를 내몰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과도한 진료비 청구를 막아 의료비를 아끼려 하지만 결국 환자가 ‘유목민’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면서 의료비를 더 많이 쓰게 만든다. 최근엔 환자가 퇴원을 거부해 병원과 소송을 벌이는 일까지 빈발하고 있다.

이런 ‘유랑 환자’의 최종 기착지는 요양병원이다. 하지만 장기간 요양 및 치료를 추구하는 요양병원 특성상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통해 환자의 빠른 사회 복귀를 목적으로 하진 않는다. 때문에 ‘아급성기’(급성기와 만성기 사이 회복단계) 재활치료를 전담할 ‘재활병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0곳의 재활전문병원과 6곳의 권역별 재활병원이 있으나 250만명에 달하는 장애인의 재활치료를 맡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와 무원칙한 진료비 삭감 등으로 대형병원은 ‘돈 안 되는’ 재활의학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재활전문병원은 전국에 4곳밖에 없다. 일본이 202곳, 독일 180곳, 미국 40곳에 이르는 것과 비교된다. 이로 인해 국내 3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장애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전국을 ‘난민’처럼 떠돌고 있다. 어렵사리 재활치료시설을 찾아도 최소 수개월에서 2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한 병원에서 1∼2개월 치료하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나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같은 난맥상은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의료법에 ‘재활 의료’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전달 체계는 병상 규모에 따라 1-2-3차 의료기관으로 나뉘어 있다. 2차 병원급 의료기관은 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요양병원, 종합병원으로만 분류돼 있다. 요양병원 조항에 ‘의료재활시설’이라는 모호한 표현이 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에 전담 부서도 없다.

전문가들은 질병의 기능적 상태에 따라 ‘급성기-아급성기-만성기’로 의료전달 체계를 점진적으로 개편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향후 인구 고령화로 증가할 신경계·근골격계 질환은 물론 암, 심장·폐질환의 급성기 치료 후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의 사회적 수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우리보다 10년 일찍 시작된 일본은 벌써부터 이렇게 바꿨다.

최근 병원급 의료기관에 ‘재활병원’을 신설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보건당국도 깊이 고민해 봐야 할 때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