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우울할 때 요리책을 꺼내 읽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며칠 감기 몸살로 앓아눕는 바람에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다가, 요즘은 어느 채널에서나 요리와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명인들의 냉장고를 보여주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재료들로 예상치 못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을 지켜보았고,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중식 요리사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만드는 장면에서 감탄 또 감탄했다. 눈으로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감기가 나은 뒤 부엌에 들어가 직접 음식을 만들자니 왠지 맥이 빠졌다. 나는 할 줄 아는 음식도 별로 없고, 만날 먹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만들어봤자 그 맛이 그 맛일 게 빤하니까. 문득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화려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텔레비전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자동차나 기차도 없다면, 그러니까 문명이라는 것, 매스컴과 교통의 발달이 사람들의 삶을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이토록 확장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예쁘다고 소문난 우리 동네 이쁜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인 줄 알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소녀시대나 수지, 지디나 유아인 같은 존재들이 없으니, 비교의 대상이 없다. 아는 얼굴들이 모두 앞동네 뒷동네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들일 테니, 선택의 범위도 좁아진다. 그렇다면 오히려 첫사랑의 설렘을 오래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아내 내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죽을 때까지 단순하고 심심하게 살지 않았을까. 가장 예쁜 사람 가장 잘생긴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큰 의미가 없었을 것도 같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고백하자면, 텔레비전 속에서 진기한 음식들을 맛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지는 않다. 매번 다른 표정과 감탄사와 수사로 맛을 표현해야 하는 게 고역일 것 같다. ‘손에 닿지 않는 포도’라서 신맛일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입력 2015-12-03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