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을 통해 불평등 연구의 한국화 가능성을 보여준 장하성(62·사진) 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1년여 만에 ‘한국 자본주의 Ⅱ’라고 할만한 후속작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냈다.
전작이 한국 경제 전반을 살피면서 불평등의 구조를 파악해 낸 것이라면, 이번 책에서는 전작에서 언급한 소득 불평등이라는 주제에만 집중하면서 이를 한국 불평등 문제의 키워드로 구성해낸다. 120여개의 그래프를 동원해 한국에서 불평등이 심화된 이유가 가진 것(재산)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니라 버는 것(소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음을 치밀하게 논증한다. 이는 세계의 불평등 연구가 재산 불평등에 주목하는 것과 구별되는 시각이다.
“한국은 재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원인이 아직은 아니다. 한국에서 불평등한 상황으로 인하여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경제적 고통을 겪는 것은 재산 불평등보다는 ‘버는 것’의 격차, 즉 소득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득이란 임금으로 받는 노동소득을 말한다. 모든 계층에서 노동소득이 전체 소득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평균적인 가계의 경우 이자나 임대료, 배당, 시세차익 같은 재산소득은 1%도 되지 않는다.
소득 격차는 결국 임금 격차다. 임금 격차가 커진 이유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늘지 않았고, 기업소득이 크게 늘었으며, 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가 크게 늘어난 사정 때문이다.
국민총소득의 분배 추이를 보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가계소득으로 분배된 몫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기업소득으로 분배된 몫이 지속적으로 늘어났음이 확인된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소득 중에서 가계소득의 비율은 70%에서 62%로 약 8%포인트 감소했고, 기업소득의 비율은 17%에서 25%%로 약 8%포인트 증가했다. 또 2000년대 이후 기업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8.1%로 가계소득의 연평균 증가율(3.6%)보다 2.3배 높았고, 연평균 경제성장률(5.5%)도 크게 앞질렀다.
노동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45%에 이르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2000년 정규직 대비 53.7% 수준이었으나 2010년 46.9%로 낮아졌다. 또 2014년 전체 노동자의 81%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 대비 62.3% 수준에 불과하다. 1980년에는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54%였고, 임금은 대기업의 97% 수준이었다.
장 교수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이 아니라 기업에게 돌아갔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면서 기업이 주도하는 임금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핵심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을 건드리는 것이다.
“제조업 대기업의 기업 잔류 수익 비중을 7.1%에서 6.5%로 0.6%포인트 낮추어서 이를 공급자 분배 몫을 늘리는데 사용하고, 중소기업이 늘어난 공급자 분배 몫을 중소기업 노동자 분배에 사용한다면 중소기업 노동자 임금이 약 10.6%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장 교수의 책은 한국의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을 던진다. 세금이 문제가 아니라 임금이 문제라는 것, 정부에 요구하는 것보다 대기업을 압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복지 확대보다 임금 확대가 우선이라는 것 등이 그렇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한국의 불평등, 세금이 아니라 임금이 문제
입력 2015-12-04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