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우주 정착지’서 비밀무기추격사건 긴박하게 전개

입력 2015-12-03 19:43
책 표지를 보면 검은 우주를 연상시키는 짙은 남색 바탕에 커다란 원 두개가 겹쳐 있다. 데뷔 10년 차인 작가 배명훈(37·사진)의 신작 장편 ‘첫숨’(문학과지성사)의 이야기 무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야흐로 달과 화성에서의 삶이 가능해지고, 우주식민지가 곳곳에 떠 있는 시기가 이 책의 시공간적 배경이다. 첫숨은 원통 모양의 도시구역 두 개로, 사상 최대 규모의 우주식민지이다. 한쪽 원통이 주거용인 첫숨, 맞은 편 원통이 산업용인 맞숨으로 불린다. 책 표지는 인구 6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우주정착지 첫숨과 맞숨의 평면도인 셈이다.

배명훈은 공상과학 소설로도 문학성을 인정받은 흔치 않은 작가다. 다양한 캐릭터의 우주 시민이 등장하는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작가의 역량이 응축돼 있다.

첫숨은 화성인들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우주 정착지다. 지구에서 거대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고 모함을 받아 첫숨으로 망명해온 최신학, 달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달 기지가 철거되면서 이주해온 한묵희가 주인공이다. 맞숨 지역에서 화성인들이 비밀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행성간 중재원의 변호사 나모린이 한묵희에게 문제의 비밀무기를 확인할 수 있도록 공연장에 뭔가를 설치해달라고 제안하고 이를 계기로 비밀무기추격사건이 긴박하게 전개되는데….

비밀무기추격사건이 스토리를 밀어가는 축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삶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교직시켜 보다 풍부한 무늬를 짜낸다. 바로 권력과 자본에 대한 고민이다. 최신학은 모 행성이 거대한 비자금 덩어리로 개발됐다는 사실을 폭로해 위험해 처해졌으니 지구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계층 문제도 깊이 건드린다. 첫숨에는 인공중력이 작용하는데, 인공중력의 크기는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출신별 거주지역의 층고가 다른 이 곳에서 물리적인 중력의 차이는 계층별 문화와 관습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중력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르다보니 첫숨에서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신분을 보여주는 표시가 된다. 작가는 “제 소설의 배경은 우주이지만 그 안에는 항상 인간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비밀무기 제조를 막기 위해 지구인, 달인, 화성인 등 출신이 다른 우주 시민들이 끈끈한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비밀무기 제조설이 어떤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정보였다는 반전 등 이야기를 흐르는 것은 휴머니티다. 올해 6월부터 6개월 간 문지 블로그에 연재된 글을 모았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