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린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50대 여성이 차에 치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그냥 내달렸다. 잠시 후 다른 차가 쓰러져 있던 그녀를 다시 치었고 역시 내달렸다. 세 번째로 그녀를 친 차량 운전자는 차를 세웠지만 그녀는 숨을 거뒀다.
차량 3대가 잇따라 들이받아 이 여성의 목숨을 빼앗는 데 고작 15초가 걸렸다. 경찰은 주변 CCTV 100대를 샅샅이 뒤져 뺑소니 운전자 2명을 결국 잡아냈다. 만약 한 명이라도 차에서 내려 그녀를 살폈다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 있다고 경찰은 말했다.
지난달 25일 새벽 2시20분쯤 정모(37)씨는 자신의 흰색 아반떼를 몰고 있었다. 서울 은평구 불광역 근처 왕복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지날 때,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던 송모(55·여)씨를 들이받았다. 현장 CCTV에는 정씨의 차량 제동등이 몇 차례 깜빡이는 게 찍혔다. 차를 멈출까 잠시 고민했다는 뜻인데, 그는 차를 세우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정씨는 집행유예 기간이었다. 지난 7월 무면허 음주운전이 적발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불량 운전’으로 수차례 처벌받은 정씨는 “가중처벌이 무서워 도망갔다”고 했다.
송씨는 2차로 한복판에 쓰러졌다. 곧 이어 검은색 그랜저가 달려와 왼쪽 앞바퀴로 무릎을 쳤다. 첫 사고 후 4초 만이었다. 그랜저 운전자 남모(26)씨도 그냥 달아났다. 현역 군 장교인 그는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던 길이었다. 그는 “사람을 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해 그대로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두 번이나 차에 치인 송씨는 등을 땅에 댄 채 도로 위에 누워 있었다. 무릎이 아팠는지 발바닥을 땅에 붙인 채 두 무릎을 살짝 구부려 들어 올리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그때 회색 승합차가 다시 달려와 송씨를 치었다. 송씨는 승합차 앞 범퍼와 바퀴 사이에 무릎이 낀 채 20m가량 끌려갔다. 뒤따르던 택시기사가 손을 흔들어 사고를 알리자 승합차 운전자 도모(58)씨는 차를 세웠다. 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송씨는 병원으로 가던 도중 숨을 거뒀다. 차량 3대가 목숨을 빼앗는 데 15초도 걸리지 않았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사고 현장 CCTV부터 살폈다. CCTV 100대의 영상을 확보해 뒤진 끝에 뺑소니 차량의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있었다.김판 기자 pan@kmib.co.kr
뺑소니… 뺑소니… 15초 만에 불광역 50대 女 세차례 치여 숨져
입력 2015-12-02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