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괴물 ISD] “ISD 괜찮다” 안심시킬 때는 이미 지났다

입력 2015-12-02 21:59 수정 2015-12-03 08:09

경기도 용인시는 2012년 용인경전철 민간 시행사인 ㈜용인경전철에 7000억여원을 배상하라는 국제중재 판정을 받았다. 용인경전철은 당시 부실시공과 경제성 논란 등 각종 잡음으로 개통이 계속 미뤄졌는데, 시행사 측이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국제중재법원에 제기한 중재에서 승소한 것이다. ㈜용인경전철의 대주주는 캐나다 자본인 봄바디어사였다. 용인시는 지방재정으로 감당할 수 없는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5100억원이 넘는 지방채를 발행해야 했다. 이후 정상적인 시 재정 운영은 불가능했다. 급기야 시민들이 “시정을 잘못해 날려버린 세수를 배상하라”며 1조원대 주민소송도 제기했다. 시정을 뒤흔든 이 사건은 지자체와 투자자 간 계약에 ‘국제중재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이뤄졌다.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의 축소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아직 한국 정부가 ISD를 통해 최종 판정을 받아본 경험은 없지만, 이미 그 위험성은 충분히 인정할 단계에 왔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태도는 론스타로부터 첫 ISD를 당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ISD 비밀주의를 벗어나 가능한 투명하게 절차를 진행해 경험을 축적하고, 정부 차원의 국제중재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 계속되고 있다.

◇‘ISD 정보공개’ 요구, “마냥 피할 때 아니다”=ISD가 언제 일어날지 모를 ‘괴담’이던 시절은 끝났다. 이미 3건의 ISD가 진행 중이다. 정부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단계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감추려 한다. 투자자가 특정 국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려면 그전(통상 6개월)에 먼저 중재의향서를 해당 국가 정부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제소된 세 건의 ISD 중 정부가 스스로 중재의향서를 공개한 건 애초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론스타 사건이 유일하다. 나머지 두 건은 외부에 먼저 알려진 뒤에야 정부가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ISD에서 정부가 패소하면 그 배상금은 정부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즉 국민 혈세를 퍼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제중재 분야의 주된 흐름은 정보 공개의 내용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미 다수의 ISD를 경험한 미국이나 캐나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ISD 중재의향서 접수 단계에서 이미 정부 홈페이지에 이 사실을 공개한다. 론스타와 한국의 ISD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론파인리소스사와 캐나다 정부의 ISD 사건을 보면 정보 공개 정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론파인리소스사가 제기한 ISD는 중재규칙 중 정보 공개 요구가 낮은 편인 운시트랄(UNCITRAL)이라는 중재규칙을 이용했음에도 캐나다 정부 측 방침에 따라 관련 정보가 ICSID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돼 누구나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 최근 비준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ISD 중재 절차와 관련한 투명성을 한·미 FTA 때보다 낮은 수준으로 규정해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래전에 체결된 투자보장협정 등에서 ISD 절차에 관한 규정이 미미한 만큼 국내법상 정보 공개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무소속 박주선 의원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됐을 때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할 의무를 명시하자는 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 자체 전문가 육성 등 적극적 대처 시작해야=정부 차원에서 국제중재 사건을 이해하고 대리할 정도의 능력을 갖춘 인력풀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미국은 ISD에 제소되면 정부 측 대리는 미국 국무성이 맡는다. 국제중재 경험이 있는 대형 로펌을 번갈아 대리인으로 세우는 한국과 매우 다른 현실이다. 한국에도 노무현정부 때 ISD 등을 비롯한 국가 관련 소송·중재를 담당하기 위한 정부법무공단이 설립됐다. 그러나 공단은 현재 ISD 관련 자문 정도의 기능만 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현재로선 국내에서 이뤄지는 소송 쪽에 기능이 더 맞춰져 있다”면서 “필요가 있다면 관련 인력을 더 늘리거나 하겠지만 지금 당장 ISD를 직접 대리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최근에서야 중재 제도를 이용한 국내외 분쟁 해결을 활성화하겠다며 ‘중재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제중재 시설 설치, 국제중재 유치 등 ‘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종우 변호사는 “중재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과 별도로, 정부 차원에서 ISD와 같이 국가 정책 등을 위협할 수 있는 사건을 맡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지금 정부의 방식으로는 민간의 대형 로펌만 계속 키우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