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째다.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만 하려던 팟캐스트(인터넷 방송)를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이야. “‘취업 시한부 방송’인데 이 친구가 이렇게 오래 취업 못할 줄은 몰랐죠.”
시작은 단순했다. 동갑내기 ‘취준생’(취업준비생) 둘이 만나서 하는 일이라곤 술잔 앞에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뿐이었다. 마냥 떠드느니 기록을 한번 남겨보자고 뜻을 모았다. 녹음한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거라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비용 걱정도 없었다. 녹음실은 존슨의 집이었다. 가끔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 배달원이 짜장면 그릇 수거하는 소리도 들어갔다.
팟캐스트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을 방송 중인 철수(본명 김태진·30)와 존슨(가명·30)을 1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어느덧 십년지기가 됐다. 철수는 ‘돌아온’ 취준생이지만 존슨은 3년차 직장인이다. 각자 서 있는 자리는 달라도 ‘취준생의 아픔’은 아직 생생하다.
취직은 꿈이 아니야
“취직을 꿈이라고 생각했던 게 환상인 것 같아요.” 철수는 직업과 꿈을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두 번째 직장에서 쫓기듯 나온 후로 든 생각이다. 2011년 졸업과 동시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은행에 입사했다. 그런데 바라던 삶은 아니었다. 1년 만에 박차고 나왔다. 하고 싶은 일을 찾다 지난해 그토록 가고 싶던 잡지사에 발을 들였다. 그런데 여기도 퇴사로 끝났다.
철수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취직을 했는데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고 했다. 밖에서 보이는 이미지로만 일과 직장을 판단한 게 잘못이었다. 항상 즐거울 것만 같던 직장생활은 겪어보니 야근과 경직된 조직문화에 잠식돼 있었다.
그만둔 뒤 의욕이 사라졌다. ‘어떻게 먹고살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종잣돈이 있어야 하는 창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철수는 ‘돌아온 취준생’이 됐다.
세 번째 직장에서 3년째 ‘버티고’ 있는 존슨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는 첫 번째 직장을 3개월, 두 번째 직장을 9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런데 2013년 결혼을 하면서 버텨야 할 이유가 생겼다. 존슨은 “회사에서 결혼하라고 권장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취준생이 죄인은 아니잖아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은 대중이 없다. 한 달에 두세 번, 내키는 대로 올린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니 상관없다. 철수가 면접에서 탈락하면 ‘특집’을 달고 자신을 떨어뜨린 기업을 실명으로 욕한다. 취준생이 보낸 사연으로 ‘취준생 상담소’ 코너를 만들기도 한다. 제목만 들으면 취업 준비의 시작과 끝을 친절히 알려주는 방송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사연을 보내는 취준생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되레 독설을 쏟아낸다.
대기업 수십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아직 취업을 못했다는 사연에는 “왜 대기업만 노려. 네가 뭐라고 생각해. 정신 차려!”라고 일갈한다. 3년이 넘도록 가고 싶은 곳에 취직이 안 된다는 하소연에는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네가 가릴 게 뭐 있냐. 중소기업, 중견기업 다 써야 한다”고 소리친다.
두 사람의 독설은 취직을 꿈이라고 생각했던 ‘쓰라린 경험’에서 비롯됐다. 존슨은 “취직을 꿈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가면 반드시 실망하게 돼 있다”고 잘라 말했다. 입사 자체가 꿈이 돼서는 안 된다는 ‘돌직구’다. 철수 역시 “우리 같은 취준생이 기업이 만들어 놓은 ‘자아실현의 터전’이란 프레임에 동화되는 게 이상하다. 그래서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욕을 한다”고 했다.
대다수 취준생은 ‘죄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거듭되는 실패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어디에도 잘 나서지 않는다. ‘음지’의 취준생을 ‘양지’로 끌어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잘 안 됐다. 온라인 채팅은 “다들 죽는 소리를 해서” 그만뒀고, 놀자고 마련한 ‘번개’ 자리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들 자기를 ‘불가촉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항상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움츠리고 있더라고. 정말 아닌데.” 연신 웃음을 띠던 두 사람 얼굴에 그늘이 졌다.
힘겹게 버티는 취준생에게 이 팟캐스트는 하나의 탈출구다. 철수와 존슨도 계속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손이 많이 가서’ 잠정 중단한 유튜브 영상은 다시 시작할 때를 보고 있다. 취업 준비의 애환을 노래에 담은 ‘취준생 앨범’도 만들고 있다. 앨범이 언제 나오느냐고 묻자 “내년, 빠르면 봄? 아니면 내후년? 안 되면 그냥 팟캐스트 녹음하듯이 휴대전화로 녹음해서 올려버리려고요”라고 ‘쿨’하게 답했다. 철수와 존슨의 꿈은 뭘까. “오늘도 모든 취준생이 ‘취업 시한부 인생’으로 살지 않기를….”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취직이 꿈? 자아실현? 정신차려!”… ‘팟캐스트 취업학개론’ 두 청년
입력 2015-12-03 05:00 수정 2015-12-03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