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이 부각되기 시작한 건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를 상대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한 1994년부터다. NAFTA 제11조에 포함된 투자자 국가 제소조항 때문이다. 미국은 NAFTA를 통해 양자 간 지역적 자유무역(FTA)을 실험했고 이 과정에서 멕시코와 캐나다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 미국은 승소했지만 내부에선 통상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형성됐다. 미 정부는 ISD 관련 통상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소유권 이전 없이도 ‘직접수용’과 동등한 효과를 갖는 ‘간접수용’ 등의 내용이 포함된 미국 판례법을 넣었다. 이후 미국은 ISD 소송에서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이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서 ISD가 최대쟁점이 된 이유가 됐다. 공공정책의 자율권이 훼손당하고 미국 투자기업들이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정부는 ‘괴담 수준’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잠잠했던 ISD 괴담이 고개를 든 것은 론스타가 제기한 소송 때문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을 비롯해 법조계는 론스타가 헌법소원까지 냈지만 패소했기 때문에 투자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회부한 국제중재를 취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론스타는 서울 강남구 스타타워 빌딩을 매각하고 얻은 소득에 법인세가 부과되자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과거 사례들을 보면 법조계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94년 국제검증기관인 스위스 SGS가 파키스탄 정부를 상대로 ICSID에 제소한 건이 대표적이다. SGS는 파키스탄에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사전 검역과 관세 품목 지정에 관한 심사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 말미엔 분쟁이 발생할 경우 오직 파키스탄 국내 중재 재판만을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SGS는 파키스탄을 ICSID에 제소하면서 파키스탄 내에서 진행되는 재판을 중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재판은 국제중재기구인 ICSID에서 진행됐고 2004년 합의로 종결됐다. 말이 좋아 합의지 사실상 패소를 뜻한다. 론스타 건도 ICSID의 판단이 헌재와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명문화된 투자 조약만 믿었다가 큰코다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한·미 FTA 주요내용’을 보면 “투자와 환경 챕터에 합치하는 범위 내에서 당사국은 투자 활동이 환경에 대해 민감성을 고려하면서 사업이 수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있음”을 규정했다. 이 내용은 NAFTA 제11장에 있는 환경에 관한 예외조항과 똑같은 문장인데 과거 환경 문제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 재판부의 해석은 이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쪽으로 이어졌다. 96년 미국의 메타클레드사가 멕시코를 상대로 ICSID에 제소한 사건이 그런 사례다. 멕시코 지역에 유독성 폐기물 처리시설을 짓기로 한 메타클레드는 지자체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자 ICSID에 제소했다. ICSID는 지자체에 156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멕시코 주정부가 환경보존 지구의 지정에 관한 동기는 판단하지 않았고 간접수용에 해당한다는 것만 보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국가가 유리한 판정을 끌어내려면 과거 준비 부족으로 실패한 국가들의 소송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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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02 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