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 발생 후 4년이 지났다. 2011년 산모들이 원인 미상의 중증 폐 질환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이 사건은 지금도 진척 없이 방치돼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는 143명, 이중 절반 이상이 영유아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망자 수(38명)의 3배가 넘는다. 총 피해자는 530여명 이지만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호흡기 질환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들과 정부의 지지부진한 구제 정책에 피해자 신청을 포기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사건에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들은 여전히 건실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들과 대조된다.
가장 많은 피해자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서 나왔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피해자 530명 중 403명이 옥시에서 판매한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했다. 사망자 143명 중 70%가 이 제품을 이용했다. 옥시는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으로 항균제 ‘데톨’ 세정제 ‘이지오프뱅’ 세탁표백제 옥시크린’과 소화제 ‘개비스콘’ 소염진통제 ‘스트렙실’ 등의 의약품을 만든다. 이 밖에도 콘돔 ‘듀렉스’ 제모제 ‘비트’ 방향제 ‘에어윅’ 등 방대한 사업 분야를 자랑한다.
피해자들이 옥시를 포함한 15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파급력은 미미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의 강찬호 대표는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피해자들끼리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맞서기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강 대표는 “사과나 가해 인정을 안 하는 기업들이 우리가 불매운동을 한다 해도 눈 한 번 깜짝이나 하겠느냐”며 “소비자 단체에서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쪽도 여의치 않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왜 소비자 단체는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케 한 역대 최악의 소비자 피해 사건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소비자 단체 3곳에 문의한 결과 이유는 여러 개로 갈렸다. 한 단체는 “소비자 이슈 면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례는 굉장히 중요하지만, 또 그만큼 조심스럽다”며 “이미 가습기 살균제는 유통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 나오는 다른 제품도 사지 말자는 운동을 하면 사업자 측에서 영업 방해를 들어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충분한 소비자 공감대가 형성된 후 불매운동 필요성이 명백해질 때 움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소비자 단체는 “불매운동에도 단계가 있다”며 “일반적인 경우 피켓팅 등으로 행동을 취한 뒤 기업과의 대화 물꼬를 마련한다. 이후 피해보상에서 적절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경우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현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옥시와의 개인 소송 등이 이어지고 있고, 합의를 본 피해자도 있어 개입이 쉽지 않다.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타이밍을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A씨는 “과거에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옥시 사옥 앞에서 불매 운동을 했다. 그러나 큰 효과는 없었다. 회사 앞에서 구호를 외쳐도 옥시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피해자들에게 일말의 관심도 동정도 없다. 결국, 호소할 곳은 인터넷 공간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금은 SNS를 통해 불매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기업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 대응 방법을 언급하며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옥시의 경우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지만 글로벌 마인드는 전혀 갖추지 못했다”며 “소비자에게 가치를 두지 않은 기업은 자연 퇴출돼야 한다. 기업이 중대한 과실을 모른 척하고 사업을 계속한다면 그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가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이건 물건을 사는 소비자들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민수미 기자 min@kukimedia.co.kr
가습기 살균제 참사 그 후… 4년간 피해배상 허송세월 제조 기업들은 천하태평
입력 2015-12-06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