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가 흰 비단을 널어놓은 45년 만에 공개되는 설악산 토왕성폭포

입력 2015-12-02 20:29
설악산 비룡폭포 우측 노적봉 중턱에 새로 조성된 전망대에서 본 토왕성폭포의 웅장한 위용. 화채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칠성봉을 끼고 돌아 낭떠러지 절벽에서 제 몸을 던지며 속살을 내보이고 있다. 두번째 수직 폭포에서 내년 2월 빙벽등반대회가 열리면 전망대에서 지켜볼 수도 있다.

‘향로봉에 해 비치니 붉은 안개 피어오르고(日照香爐生紫煙)/아득히 폭포수 바라보니 긴 강이 하늘에 걸려 있네(遙看瀑布掛前川)/날아오르다 곧게 떨어지는 물줄기 삼천 척에 달하는데(飛流直下三千尺)/혹여 이것은 은하수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아닐까(疑是銀河落九天).’

중국 당나라의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천길 단애의 절벽으로 쏟아지는 여산폭포의 비경에 취해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를 통해 이렇게 노래했다. 하지만 조선 숙종 때 문인 김창흡(1653∼1722)은 유산기(遊山記)인 ‘설악일기’에서 토왕성(土旺城)폭포를 중국이 천하명산이라고 자랑하는 여산폭포보다 낫다고 평했다. 토왕성폭포의 비경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이 광경을 본 사람은 누구나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본래 명칭은 ‘성할 왕(旺)’이 아닌 ‘임금 왕(王)’을 써서 ‘土王城’이었다. 영조 때 ‘여지도서(輿地圖書) 양양도호부’편이나 ‘양양부읍지’에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土城王)이 돌로 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폭포가 있어 석벽 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 때 산성인 권금성(權金城)처럼 성의 흔적이란 얘기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 한자 표기가 ‘土旺城’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토기(땅의 기운)가 왕성하지 않으면 기암절벽이 생기지 않는다”는 오행설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토왕성폭포는 석가봉, 문주봉, 보현봉, 문필봉, 노적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설악산 10대 명승이자 3대 폭포의 하나인 토왕성폭포가 1970년 설악산국립공원 개장 이후 45년 만에 5일 공개된다는 소식에 미리 찾아봤다. 겨울철 빙벽 등반객이 아니면 2㎞ 이상 멀찍이 떨어져 봐야 했던 장관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가슴은 출발 전부터 설레었다.

비룡교를 건너 비룡폭포까지 약 2.1㎞는 기존 탐방로를 이용한다. 1.7㎞쯤 가면 32년 만에 재정비된 육담폭포 출렁다리가 반긴다. 빠른 걸음으로 20여 분 걸린다. 여섯 개의 담(潭)을 가지고 있는 폭포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육담폭포는 주변의 경치와 어울려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준다.

육담폭포를 지나면 경사가 급한 계곡 길은 여러 차례 꺾이고 돌아 돌계단으로 혹은 철제 데크와 다리로 이어진다. 10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등에 땀이 흥건해 질만큼 오르고 나면 저만큼 앞을 가로 막은 절벽에 옆으로 비낀 듯이 바위를 깎아 물길을 만들고 20여m 높이의 암벽에서 하얀 물줄기를 쏟아 내는 비룡폭포가 신비로운 경지를 느끼게 한다. 깊은 담 속으로 내리꽂히는 청정한 물소리가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 준다.

이 폭포에는 모양이 뱀과 같고 길이가 한 길이 넘으며 네 개의 넓적한 발을 가진 용이 살았는데, 처녀를 바쳐 용을 하늘로 보냄으로써 심한 가뭄을 면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험준한 산길을 올라 첫눈에 보면 용이 굽이쳐 석벽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아 비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는 410m. 거리는 짧지만 수직으로 200m 가까이 높여야 한다. 깔딱고개가 따로 없다.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곧추세운 길 따라 새로 조성된 900여개의 나무데크 계단에 한발 한발 놓으면 하늘 높이 솟았던 산 능선도 발아래로 펼쳐진다. 토왕골이 감추어 놓은 비경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비룡폭포에서 20여분 만에 노적봉(716m) 중턱 해발 480m 정도에 새롭게 만들어진 전망대에 도착했다. 1㎞ 남짓 떨어진 거리에서 순백의 색채를 띤 토왕성폭포가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드러냈다. 상단 150m, 중단 80m, 하단 90m 등 장장 320m의 연폭(連瀑)으로 국내 최대다. 외설악 화채봉(1320m)에서 흘러내린 물이 칠성봉(1077m)을 끼고 돌아 낭떠러지 절벽(약 890m)에서 제 몸을 던지며 속살을 내보인다.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국의 거대한 절벽에서 얼음 사이로 마치 하얀 명주실을 뭉쳐 늘어뜨린 실타래처럼 순결한 물줄기가 수줍게 흘러내리며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 보인다. 최근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했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얼음이 얼어 겨울왕국을 연출하고 있었다. 폭포수가 워낙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마치 물줄기가 하늘에서 비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평소 멀리서 보면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 위에 널어놓은 듯한 천상의 풍광이다.

전망대에서 하단 폭포가 보이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물은 토왕골을 지나 비룡폭포, 육담폭포를 거쳐 쌍천(雙川)에 합류한 뒤 동해로 흘러간다. 토왕성폭포를 제대로 보려면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다. 늦으면 햇빛은 능선에 막히고 폭포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겨울 토왕성폭포가 얼어 빙벽을 이루면 이곳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빙벽훈련장이 된다. 산악인들은 토왕성폭포를 대승폭, 소승폭과 함께 한국의 3대 빙벽으로 꼽는다. 겨울철 필수 훈련코스다. 1997년 국내 첫 빙벽등반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가장 긴 폭포 상단은 평균 경사도 85∼90도로, 강촌 구곡폭포와 더불어 총 8단계의 빙벽등급(WI·water ice) 가운데 ‘WI 5’ 수준이라고 한다. 대승폭은 ‘WI 6’으로 더 가파르다.

속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