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된 괴물 ISD] 우리 기업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입력 2015-12-01 21:45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은 한국 정부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독소조항’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일부 국내 기업들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가 있다 하더라도 한국은 세계 무역에서 ‘키 플레이어(Key player)’가 아니기 때문에 ISD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전부 3건이다. 중견 건설회사인 안성주택산업은 2006년 중국 장쑤(江蘇)성 서양(射陽)에 27홀 골프장을 짓기로 지방정부와 투자 계약을 했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당초 약속과 달리 충분한 토지를 제공하지 않았고, 주변에 다른 골프장 건설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방해했다. 이에 안성주택산업은 재산상 손해를 봤다며 지난해 11월 중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했다. 안성주택산업은 결국 짓던 골프장을 중국 기업에 헐값으로 매각하고 약 150억원의 손실을 본 뒤 철수했다.

대기업 사례도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3년 오만 국영 정유회사 ORPIC의 10억 달러(약 1조1578억원)짜리 플랜트 사업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후 협상이 틀어지면서 최종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ORPIC는 입찰보증서를 근거로 은행에 설정해 놓은 본드콜(계약이행보증금 회수)을 행사해 삼성엔지니어링이 이를 물어주게 됐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부당하다고 판단, 지난해 7월 오만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또 임의중재 방식을 선택해 회사명이 공개되지 않은 국내 대형 건설회사가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2013년 2월 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3가지 사례는 모두 특수한 상황에서 제기된 ISD였다. 안성주택산업은 중국에서 사업을 계속하려 했다면 중국 정부와 관계를 고려해야 했지만 중국 사업에서 손을 뗐기에 ISD를 제기할 수 있었다. 또 오만과 리비아는 한국과 교역 규모가 크지 않아 ISD를 제기한 뒤 국내 기업의 피해를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하는 것은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자유무역협정(FTA)은 무역 보복 가능성 때문에 ISD 제기가 쉽지 않다”면서 “양자 간 투자협정(BIT)의 경우에도 교역 규모가 작은 나라라면 몰라도 무역 강국을 상대로 한 ISD는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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