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명동성당 천막농성 단병호 퇴거 요청… 2002년 조계사 공권력 진입 발전노조원 체포

입력 2015-12-01 20:02 수정 2015-12-01 22:03
지난 16일 조계사에 들어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은신이 길어지고 있다. 종교시설로 숨어든 수배자를 언제까지 품어줘야 하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거세다.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명동성당이 은신처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라는 명분이 사라지면서 변화를 맞는다.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던 시위대 가운데 일부는 성당의 상징성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신자들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불만도 새어나왔다.

2001년 7월에는 20여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이던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성당 측은 “민주노총의 투쟁본부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단 전 위원장은 같은 해 8월 자진 출두해 수감됐다.

조계사도 수배자 거취를 놓고 수차례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은 2002년 조계사에 체포조를 투입해 발전노조원 7명을 검거했다. 조계사의 시설보호 요청을 받았음에도 승려와 신도의 강한 반발을 샀다. 공권력 투입이 금기시되는 종교시설에 경찰이 들어왔다는 이유였다. 서울경찰청장이 사과를 했고 이후 조계사에 경찰이 투입된 적은 없다.

2008년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 등이 조계사에 몸을 맡겼다. 3개월을 머물다 그해 10월 포위망을 뚫고 조계사를 빠져나갔다. 2013년 12월에는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된 박태만 당시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은신했다. 박 부위원장은 파업이 끝난 뒤인 이듬해 1월 조계사에서 나와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예전 조계사에 은신했을 때 일부가 불만을 표한 적은 있어도 이번처럼 신도들이 나서서 끌어내려고 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