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인근 지역에 지원되는 원전특별지원금이 사실상 주민들의 ‘쌈짓돈’처럼 주먹구구로 사용돼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결과 드러났다. 주민대표들은 원전지원금을 멋대로 사용한 뒤 허위로 서류를 꾸미거나 아예 결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감독관청은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일 부산 기장군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근 원전지원금을 받는 고리원전 반경 5㎞ 이내 지역에 대한 집중 감사를 벌여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원전지원금은 1989년 제정된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전 인근 지역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기금을 조성해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전달한다. 지자체들은 해당 마을에 예산을 집행한 뒤 추후 결산자료와 증빙서류를 제출받도록 돼 있다.
기장군은 고리원전과 신고리원전으로부터 해마다 30억∼100억원을 받아 인근 60여개 마을에 지원했다. 올해는 60억원, 내년에는 100억원이 책정됐다.
주민들은 이 돈으로 상수도·어린이놀이터·체력단련장 설치, 복지회관·남녀 경로당·남녀 찜질방·농기계창고 건립, 물탱크 보수, 발마사지기, 곡물건조기 구입 등 50여종의 주민숙원사업을 시행했다.
그런데 마을별로 지원된 돈을 마을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개발위원장 등 주민대표들이 멋대로 사용하자 주민들이 감사원에 진정을 제기했다.
장안읍 주민 A씨(65)는 “지원금으로 구입한 농기계 등을 마을대표가 불법으로 개인용도로 사용하거나 일부 마을에서는 비자금을 조성해 회식비 등에 사용한다”고 감사원에 털어놨다.
원전지원금 사업에 참여했던 업체 대표 B씨는 “이장 등 주민대표의 요구대로 견적서를 제출한 뒤 향후 지속적인 공사를 위해 물품대금과 공사비를 주는 대로 받았다”고 말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Y마을 이장 등 주민대표들은 지원금을 2000만원 미만으로 쪼개 수의계약을 하고, 회의록 등 서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이 마을은 농로 포장과 마을회관을 신축한다며 2007년과 2011년 4회에 걸쳐 2억36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결산자료조차 기장군에 제출하지 않았다.
감독기관인 기장군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서류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해마다 70여개 마을에 100여억원을 지원하면서 직원 2명이 집행과정을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울주군의 경우 서생 지역 21개 마을이 2006년과 2012년에 각각 건립한 회센터가 방치되는 등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으로 잡음이 일자 최근 원전지원금을 군이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이장 등 마을 대표자 몇 명이 협의하면 원전지원금을 멋대로 집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시 울주군, 경북 울진군, 경주시, 전남 영광군 등 원전 소재 5개 지자체 대부분 상황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은 원전지원금 결산 내용이 부실하거나 지원금을 부정 사용한 의혹이 있는 마을에 대해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 이장 등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부산=윤봉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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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쌈짓돈 된 원전지원금… 결산자료 없고 회식비로 펑펑
입력 2015-12-01 21:49 수정 2015-12-03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