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일본의 저명한 원로 디자이너 에쿠안 겐지가 작고했다. 그의 대표작은 깃코만 간장병이다. 아마 지금 40대(?) 이상이면 기억할, 예전 중국집에 가면 반드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빨간색 뚜껑에 부드러운 곡선으로 된 유리병이다.
이 병은 미국의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코카콜라병과 함께 세계 디자인사에 영원히 남을 곡선 디자인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병이 마릴린 먼로의 몸매처럼 풍만한 상체와 잘록한 허리 라인을 자랑한다면, 깃코만 간장병은 나긋하게 흘러내리는 동양 여인의 어깨선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토르소(상반신상)인 셈인데, 서양과 동양의 감성적 차이를 드러내는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예전부터 깃코만 간장병이 신라의 첨성대를 닮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물론 에쿠안 겐지가 첨성대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또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전혀 없다. 세상에는 닮은꼴이 많이 있고 같은 문화권 안에서 형태적 유사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물들에서 형태적 유사성을 읽어내는 감성적 형식 자체가 문화적인 것일 수도 있다.
몇 해 전인 2011년에 역시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인 야나기 소리가 작고했다. 그의 대표작은 ‘버터플라이’라는 이름의 의자이다. 구부린 합판 두 짝을 붙여 만든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로서 이 역시 나비 모양의 곡선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들은 주전자와 냄비 같은 생활용품인데, 우리나라의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살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야나기 소리 주전자로 알려진 제품은 넉넉한 풍채가 마치 조선의 달항아리를 연상시킨다. 어떻게 현대 일본 주전자에서 조선 백자의 느낌이 나는 걸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혐의(?)는 뚜렷하다. 왜냐하면 야나기 소리의 아버지가 바로 조선 예술을 찬미했던 민예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이기 때문이다. 야나기 소리는 무네요시가 설립한 일본민예관의 2대 관장을 맡기도 했었다. 분명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정황 증거는 분명해 보인다. 일본 현대 디자인에서 조선 공예의 흔적을 감지하는 나의 느낌을 결코 견강부회나 국수주의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조선 공예가 일본 디자인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이해나 현재적인 의미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식민지 시기에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의한 조선 공예의 발견과 재해석, 그리고 일본 현대 디자인으로의 적용이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자의 일본 전파에 비견할 만한 문화적 사건이라고 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문화적 수탈 같은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본다. 그런 편협한 민족주의 논리를 벗어나서 문화의 교류와 동력의 속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깃코만 간장병에서 신라 첨성대의 곡선미를 떠올리고, 야나기 소리의 주전자에서 조선 달항아리의 넉넉한 살집을 매만지게 되는가. 나는 왜, 한국 현대 공예나 디자인이 아니라, 일본 현대 디자인 속에서 신라와 조선의 디자인을 느끼는 것일까. 나는 왜, 한국 현대공예와 디자인에서 조선 공예를 느낄 수 없는 것일까.
나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또 실상은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이기에.
최범 디자인평론가
[청사초롱-최범] 조선 공예와 일본 디자인
입력 2015-12-01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