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2010년대, 대중가요 노랫말에 담긴 정서… 은유적인 ‘우리 이야기’ vs 직설적인 ‘나의 이야기’
입력 2015-12-01 20:14
이런 노랫말을 가진 곡이 있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이런 곡도 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위 아래 위 위 아래/ 난 몰라 순진한 척 하는 네 동공/ 날 네 맘대로 들었다가는 놓고/ 덴 아이 필 로코 오 오(then I feel loco oh oh)’
앞은 고(故) 유재하가 1987년에 낸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에 실린 동명의 곡 노랫말이다. 뒤는 아이돌 그룹 EXID(이엑스아이디)의 2014년 앨범 ‘위 아래’에 실린 곡이다. 둘 다 사랑 노래지만 1980년대와 2010년대 대중가요는 이렇게 다르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국민 드라마 수준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80년대 정서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시대의 정서는 노랫말에도 담겨 있다. 80년대 정서와 2010년대 정서는 그래서 어떻게 다를까. 그 차이를 80년대 인기가요 100곡, 2010년대 인기가요 100곡 등 총 200곡의 노랫말을 비교·분석해봤다.
#1980년대: 우리, 2010년대: 나
‘응팔’ 신원호 PD는 80년대를 “‘나의 것’이 없던 시절”이라고 했다. 내 전화기가 없었고, 내 방이 없었고, 나만 쓰는 물건이 없었다. 소유의 개념이 ‘우리’에게 있었던 시절이다 보니 음악에도 ‘우리’ 이야기가 많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조용필 ‘어제 오늘 그리고’).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 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봄여름가을겨울 ‘어떤이의 꿈’)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었노라고’(무한궤도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우리’의 이야기는 10대도, 60대도 공감할 수 있다. 80년대를 살던 사람들도, 2010년대를 사는 사람들도 설득시킬 수 있다. 그래서 ‘잊혀진 옛 노래’가 아니라 20년이 넘도록 꾸준히 불러진 곡들이다.
작사가 김이나씨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 되는 데에는 반드시 좋은 가사가 필요하다. 10대에 즐겨듣던 곡을 40대에 들어도 어색하지 않은 가사가 그렇다”고 했다.
2010년대에는 ‘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남들과 다른 나’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나’라는 식의 주제 의식이 10대들에게 공감과 열광을 얻어낸다.
‘솔직히 세상과 난 어울린 적 없어/ 홀로였던 내겐 사랑 따윈 벌써/ 잊혀진지 오래 저 시간 속에/ 더 이상은 못 듣겠어 희망찬 사랑 노래’(빅뱅 ‘루저’).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 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아이유 ‘스물셋’). ‘누가 봐도 내가 좀 죽여주잖아/ 둘째가라면 이 몸이 서럽잖아/ 넌 뒤를 따라오지만 난 앞만 보고 질주해’(2NE1 ‘내가 제일 잘 나가’).
‘나’의 이야기는 10대를 강렬하게 사로잡을 수 있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게 약점이다.
#1980년대:에둘러서, 2010년대:직설적으로
80년대 인기가요는 2010년대보다 장르가 훨씬 다양했다. ‘가요톱10’ 1위곡들을 보면 포크, 록, 발라드, 댄스, 트로트까지 아우른다. 10대들 뿐 아니라 40대가 즐겨 듣는 노래도 많았다. 그래서 80년대 노랫말은 서정적이고 은유적이다.
‘사랑이 뭔지 잘 몰라도/ 왠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자꾸 나는 누군가 그리워져/ 자꾸 나는 누군가 보고 싶어’(이선희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슬픔은 간이역에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넌 향긋한 바람/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산울림 ‘너의 의미’).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이문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010년대는 음원 사이트의 ‘차트 순위’가 인기를 가른다. 주요 소비자인 10대가 좋아하는 아이돌 댄스뮤직과 힙합이 대중음악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들을 겨냥한 노래들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이고, 세고, 재밌다.
‘바로 어제 3년 약정한 핸드폰/ 정신 차리니 박살 나 있고/ 바닥엔 할부 안 끝난 모니터/ 눈 앞에 넌 계속 악 쓰고 있고’(매드클라운 ‘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미쓰에이 ‘굿 걸 배드 걸’). ‘온 몸이 찌릿찌릿/ 우리 둘이 흔들 흔들어/ 심하게 통하니 여기 불났으니/ 웬 아이 무브(When I Move)/ 움직여 자리 잡았으니’(씨스타 ‘쉐이크 잇’).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라 보는 시대가 된 것도 노랫말에 영향을 미쳤다. ‘다 같이 원 빠빠빠빠 빠빠빠빠/ 날따라 투 빠빠빠빠 빠빠빠빠’(크레용팝 ‘빠빠빠’). ‘오 예스 음 오 아 예/ 너에게 빠져들겠어/ 자꾸 반응하잖아/ 오 예스 음 오 아 예’(마마무 ‘음오아예’).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싱어송라이터는 “기획사에서 팔리는 곡들을 만들다보니 노랫말의 질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010년대 대중음악 노랫말이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시적인 표현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