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도움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만 무엇이 필요한지 꼭 물어보고 도와주세요.”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37·사진) 변호사는 30일 대법원에서 법관과 법원 직원들을 상대로 강연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연자로 나선 그는 변호사로서 변론 업무를 수행할 때 여전히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재판에 제출되는 자료에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가장 큰 고충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증거로 제출된 사진자료는 직접 볼 수 없으니 아내에게 한 시간씩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재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종이기록에 대한 접근도 쉽지 않다. 판결문 한 장을 읽으려면 종이기록을 스캔한 뒤 OCR(광학적 문자판독장치)에서 텍스트만 빼내 컴퓨터에 파일로 저장하고, 음성전환기를 통해 듣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김 변호사는 “법원 전자소송 홈페이지의 스크린리더 서비스는 ‘개선 중’이라는 말만 붙어 있고 여전히 작동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가 서울대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도 매번 마주해야 했던 어려움이기도 하다.
김 변호사는 “장애는 유형과 정도에 따라 개별적이며 그에 맞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도와주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표적 사례로 법원도서관이 출시한 시각장애인용 ‘법고을LX’ 프로그램을 들었다. 대법원의 판례와 규칙 등을 담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에 음성합성 프로그램을 접목한 것이다. 그는 “정작 제일 필요한 부분은 스크린리더기 접근 기능이 없고 시각장애인이 쓰지도 않는 마우스로 프로그램을 작동하도록 만들어놨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 재학 중 녹내장으로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도 잃었다. 생물학 연구자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장애 자체보다 주변 환경이 장애인의 인생에 더 결정적”이라며 “장애인을 편견 없이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 변호사는 지인의 권유로 로스쿨에 진학한 뒤 2012년 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인권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당한 지적장애인을 대리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기도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씨 대법원서 강연… “장애인에 도움?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세요”
입력 2015-11-30 18:56 수정 2015-11-30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