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육상 스타’ 서말구(60·사진)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30일 새벽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서 교수는 2010년 말 뇌경색을 앓았지만 최근 회복해 후진 양성에 힘써 왔다.
고인은 19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 육상 100m에서 10초34의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10년 6월 7일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김국영(24·광주광역시청)이 10초23을 세울 때까지 31년 동안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울산고 1년 때 육상에 본격 입문한 고인은 고3 때 전국대회 남자 100m에서 우승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동아대 1학년이던 1975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꼽혀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1979년 아시아선수권 최종 선발전에서 10초3으로 달렸지만 당시 ‘수동 계시’를 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멕시코에서 10초34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전자 계시’를 한 이 기록이 한국 신기록으로 인정됐다.
2009년 한국 육상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해 여호수아 등 단거리 선수들을 집중 육성했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차병원(031-708-6170)에 마련됐다. 발인은 2일. 울산 출신으로 고인의 부모는 마흔을 넘어 아들을 얻었고 이름을 ‘말구’라고 지었다.
고인은 육상인이면서도 한국프로야구와 각별한 인연이 있다. 육상에서 은퇴하고 1984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1987년까지 선수와 트레이너로 일한 이색 경험이 있다. 당시 롯데는 체력 트레이너를 맡기는 한편 발이 빠른 그에게 내심 대주자 역할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야구 1군 경기에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롯데에서 함께 뛰었던 SK 와이번스 사령탑 김용희(60) 감독은 “야구에도 많은 걸 가르쳐 준 체육인”이라며 “정말 열정적인 분이셨다. 육상 훈련 기법을 야구 선수의 몸에 알맞게 접목해 스피드를 키우고 부상을 줄이는 방법 등을 연구했다”고 회상했다. 대주자로 출전하지 못했던 것과 관련해 김 감독은 “그때 한국에서 서 교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없었지만 도루는 달랐다”면서 “야구 선수는 투수의 투구 동작, 포수와 야수진의 움직임을 보고 뛰기 때문에 스타트에서 야구 선수들이 서 교수보다 빨랐다”고 했다.
육상 후배 장재근(53) 화성시청 감독은 부음 소식을 듣고 “한국 육상에 큰 획을 그은 서말구 선배를 잘 모시지 못해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고인은 매사에 정확한 분이셨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으셨다. 어려운 여건에서 좋은 기록을 내셨던 것도 그런 성품 덕이었다”고 말했다.
서완석 체육전문기자 wssuh@kmib.co.kr
그는 31년간 ‘한국의 볼트’였다… ‘100m 10초34 기록 보유자’ 서말구 교수 별세
입력 2015-11-30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