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배병우] 외국이 우려하는 한국 민주주의

입력 2015-11-30 17:44

외국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 기사는 주로 남북관계, 북한에 관한 것들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의 안보지형 변화도 한국 사정이 자주 언급되는 주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는 정치·사회 분야 등 국내 이슈가 외신에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파동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더욱 잦아졌다. 대부분이 부정적 기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7일자에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시징 앱인 카카오의 이석우 전 대표를 검찰이 기소하기로 한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는 정부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감시 강화에 그가 저항한 데 대한 징벌로 여겨진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카카오에 대한 요구는 너무 애매하고 실행하기 힘들어 기소의 진정한 동기는 일종의 보복”이라는 전 방송통신위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지난 10월 19일 ‘시대를 되돌리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사설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을 제기한 한국의 입지를 스스로 허무는 것이라는 경고를 곁들였다. AFP통신은 박 대통령이 복면 시위자를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에 비유한 데 대해 지난 14일 대규모 서울 도심시위 조직자들은 “말문이 막힌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24일 보도했다.

하지만 부정적 해외 여론의 정점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사설이 찍었다. 이 신문은 지난 19일자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의 꼭두각시 체제와 한국을 낮과 밤처럼 구별해주던 민주주의적 자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퇴행시키려고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걱정스럽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신문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박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 특히 민주주의적 자유가 산업화에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던 시기에 대해 미화된 버전을 가르치려 한다”며 “이러한 동기 중의 일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 경제는 올해 메르스의 유행과 중국의 수요 감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며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의 평판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비판자들을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가혹한 조처들”이라고 비판했다.

NYT가 사설을 통해 한국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이처럼 강한 톤으로 공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신문은 또 23일 오피니언 면에 ‘한국 정부의 역사 교과서 세탁’이란 기고문을 실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다시 소개했다. 기고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가 속한 새누리당이 과거를 세탁해 보수 정권의 명분을 강화하려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은 한국의 교육 제도와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의 국제적 명성이며, 일본에 과거사 책임을 묻고자 하는 한국 정부의 노력 또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썼다.

NYT의 날선 비판이 특히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 신문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여론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NYT가 단순히 한 유력지가 아니라 미국을 지탱하는 ‘제도(institution)’라는 걸 몇 차례 실감한 바 있다. 이 신문의 이례적으로 강한 비판 논조는 워싱턴의 정책당국자들 사이에서도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징표로 봐야 할 것 같다. 배병우 국제부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