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용] 정주영 리더십이 그립다

입력 2015-11-30 18:01

금년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정 회장을 비롯하여 동 시대를 살았던 고(故) 이병철, 구인회, 최종현 회장과 다른 많은 기업가들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경제 부흥을 선도했다. 당시에 이들과 같은 걸출한 기업가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한국으로서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기업가란 불확실한 상업 세계에서 미지(未知)의 이윤 기회를 찾아나서는 행동인(行動人)으로 정의된다. 미지의 이윤 기회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줌으로써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기업가들은 창의적·낙관적·모험적·경쟁적인 특성을 띤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낙관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업의 성공 확률을 높게 보고 모험적으로 행동한다. 또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품질 면에서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겸비한다.

정 회장이 활동했던 전쟁 후 한반도는 거의 초토화됐고,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윤 기회를 발견하는 일은 지금보다는 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잿더미에 올라앉아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희망보다 절망이,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섰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특유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정 회장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거침없이 길을 개척해 전후 한국경제 부흥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정 회장은 무일푼에서 출발했지만 ‘모래밭에서도 풀밭을 보는’ 긍정적인 성격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전후 산업의 황무지에서 건설, 자동차, 조선, 전자 등의 산업을 일으켜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집단이 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

흔히 한국의 경제성장 역사를 돌아보며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부도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당시의 정부 정책은 전반적으로 사유재산을 존중하고 경제 개입 방향도 ‘효율’에 기초한 것이었으며, 차관을 얻어 투자한 기업은 망했으나 기업가는 호사를 누리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일소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기업가들을 앞세우고, 이들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고 격려함으로써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기업가 정신을 한껏 고양했던 것이다. 이는 경제 활동을 완벽하게 통제했던 오늘의 북한과 대조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 차이가 있어 기업가적 소양이 강한 사람이 있고 덜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기업가 정신은 같은 개인이라 하더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한껏 발휘되기도 하고 시들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문제는 기업가들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사그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금의 한국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길은 기업가들이 그들 특유의 특성과 모습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들의 활동을 옥죄고 있는 제반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크고 작은 기업가들이 정 회장처럼 어떠한 난관에서도 ‘이봐, 해봤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벤처 정신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운신 폭을 최대한 넓혀주는 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주영 회장 탄신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가슴깊이 새기고 실천해야 하는 교훈이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