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 감독의 멜로 로맨스 ‘브로크백 마운틴’(2005),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범죄 스릴러 ‘조디악’(2007), 드니 빌뇌브 감독의 미스터리 ‘에너미’(2013), 댄 길로이 감독의 사회고발 드라마 ‘나이트 크롤러’(2014), 데이빗 러셀 감독의 코믹멜로 ‘엑시덴탈 러브’(2015)…. 독특한 영화들의 공통점은 주연배우가 같다는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는 누구일까.
힌트를 주자면 봉준호 감독이 내년 초에 촬영하는 신작 ‘옥자’에서 비중 있는 배역으로 캐스팅됐다. 바로 할리우드 배우 제이크 질렌할(35·사진)이다. 그가 3일 개봉되는 ‘사우스포’(안톤 후쿠아 감독)에서 권투선수로 거듭났다. 43승 무패의 신화를 달리고 있는 라이트 헤비급 복싱 세계챔피언 빌리 호프 역을 맡아 파이터의 투혼을 불사를 뿐만 아니라 가슴 절절한 부성애로 관객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호화로운 삶을 누리던 호프는 어느 날 한순간의 실수로 아름다운 아내 모린(레이첼 맥아덤즈)을 잃고 만다. 예상치 못한 비극에 믿었던 매니저와 친구들도 떠나버리고 자책과 절망 속에 살아가던 그는 결국 하나뿐인 딸 레일라의 양육권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고군분투하는 질렌할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발휘된다.
1991년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 사랑’을 통해 데뷔한 그는 2001년 ‘도니 다코’에서 첫 주연을 맡은 후 ‘소스코드’ ‘투모로우’ ‘에베레스트’에 출연하면서 연기파 배우로 성장했다. ‘패리스 트라웃’ ‘나의 청춘 워터랜드’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스티븐 질렌할이 그의 아버지이고 ‘프랭크’ ‘크레이지 하트’ 등에서 주연을 맡은 매기 질렌할이 누나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끼를 타고난 셈이다.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편안한 미남 스타일로 어떤 역을 맡아도 자연스럽게 소화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을 갖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복싱선수로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해 실제 선수처럼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5개월간 매일 6시간씩 윗몸 일으키기 1000번, 턱걸이 100번을 반복하고 줄넘기와 8마일 달리기를 병행했다.
아울러 복서의 강한 정신력을 익히려고 실제 월드 챔피언의 훈련 장소를 방문해 조언을 구했다. 아이가 없는데도 딸 역을 맡은 우나 로렌스와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좋고 나쁨, 사랑과 미움이 존재한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아빠 연기도 일반적인 관계를 연기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호프는 딸을 되찾고 자랑스러운 아빠로 거듭나고자 생애 가장 어려운 시합에 나서기로 한다. 사우스포(Southpaw)는 복싱이나 야구에서 왼손잡이 선수를 지칭한다. 오른손으로 계속 잽을 던지다 왼손으로 강력한 한방을 날리는 게 장기인 호프는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복싱을 소재로 하되 아빠와 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가족영화다.
사각의 링 안에서 오가는 빠른 주먹과 딸을 지키기 위한 집념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질렌할의 눈빛이 강렬함을 넘어 전율을 자아낸다. 호프가 분노조절 장애를 딛고 일어선다는 측면에서 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당초 주인공으로 내정된 힙합 가수 에미넘이 배역을 포기하는 대신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제작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15세 관람가. 124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봉준호 신작 ‘옥자’에 캐스팅된 연기파 질렌할 ‘권투 세계챔프로 스크린 점령’… ‘사우스포’ 개봉
입력 2015-12-01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