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많이 가는데, 함씨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거물급 무기중개상 함모(59)씨가 최윤희(62) 전 합참의장에게 금품로비를 했다는 혐의를 수사 중인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알려진 2000만원보다 뒷돈 규모가 클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더 큰돈이 약속돼 있었다”는 진술이 다른 경로로 확보됐지만 함씨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정확한 뇌물액수 파악을 위해 합수단은 함씨 구속영장을 두 번째로 청구한 상태다.
어려워진 ‘특별수사’
피의자로부터 결정적 진술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아쉬움은 최근 검찰의 여러 특별수사에서 등장한다. 기업범죄 수사가 윗선으로 향하지 못하고, 비리의 본류에 좀체 파고들지 못한다는 식의 비판도 계속돼 왔다. “검사 개개인의 전문 역량은 과거보다 뛰어나다”는 법조계 평가를 받아들인다면 이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연초 “의사결정을 한 핵심 인물이 아니면 가급적 형사처벌에 엮이지 않게 하겠다”는 원칙을 공표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피의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상부선을 비호하는 함구 관행으로 악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기업수사 피의자들에게서 마치 과거 폭력조직 수사에서 접하던 모습을 본다는 검사도 많다. 강력한 조직이 생사여탈권을 쥔 상태에서 “네 선에서 처리하라”는 식의 압박을 가하는 대목이 닮았다는 설명이다.
포스코 수사 과정에서 맨 처음 사법 처리된 포스코건설 베트남법인장의 경우 목에 붉은 줄이 선명한 채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베트남에서 귀국해 검찰 소환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의 모텔에 묵었는데, 포스코 임원들의 압박을 받고 2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변호인이 구속을 종용할 정도였다. 당시 검찰은 구속 이유에 대해 “비자발적인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사 정보 누출을 확인하는 일도 검찰에는 이제 익숙하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경남기업과 정치권 인사 등의 실시간 수사상황 정보공유에 염증을 느껴 했다. 포스코 관련 수사를 받던 컨설팅업체 대표가 검찰 수사 중 휴대전화를 화장실 변기에 버린 사건은 시사적이다. 그는 검찰 소환조사 중 전 정권의 경제수석 출신에게 “제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를 버렸다가 화장실 변기가 막혀 탄로 났다.
고개 드는 플리바게닝 논의
검찰은 그간 기업범죄의 수사방해 실태에 대한 언급을 꺼려 왔다. “핑계로 보일 듯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수사 환경에 새로운 수사 도구가 필요하다는 언급을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는 “구슬을 꿰어주는 건 결국 진술”이라며 “플리바게닝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리바게닝이란 자백 진술의 대가로 검찰이 구형량 등을 낮춰주는 유죄 협상을 뜻한다. 한정된 사법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검찰의 뜻은 예전에도 강하게 피력됐었다. 법무부는 2011년 7월 내부증언자 소추면제제도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했다. 타인의 범행에 대한 진술일 뿐, 자신의 범행에 대해 죄를 인정하고 혜택을 받는 플리바게닝과는 구별된 형태였다. 그러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되지 않았고 법안은 폐기됐다.
하지만 기업범죄가 복잡해지면서 “다수인이 벌인 은밀한 범죄의 경우 플리바게닝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됐다. 수사에 협조한 피의자에게 혜택을 주자는 제안은 국회에서 먼저 있었다. 지난달 2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한성 의원은 “수사기관에서 협조하고 자백한 것은 법원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걸 수십 년째 경험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대단히 큰 차이를 두는데, 대안을 마련해 보자”고 법원행정처에 제안했다.
미국과 독일 등에서도 플리바게닝은 순기능이 인정되는 편이다. 다만 우리나라 검찰권이 크고, 그간 사실상 유죄협상이 활용됐다는 지적은 논의를 이어가야 할 부분이다. 2013년 6월에는 박범계 의원이 “검찰이 국가정보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에 플리바게닝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0년 4월 법사위에서는 노철래 의원이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플리바게닝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사와 피의자의 거래 속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빠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기획] ‘플리바게닝’ 다시 수면위로…포스코·방산 비리 등 피의자 함구로 수사 어려움
입력 2015-11-30 05:00 수정 2015-11-30 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