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인분교수 피해 없게… 대학원 총학생회가 ‘갑질 교수’ 웹툰 제작

입력 2015-11-29 21:42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교수의 갑질’ 사례를 수집해 제작한 웹툰의 일부. 총학생회 제공

대학원생 A씨 학과는 지난해 강원도로 세미나를 떠났다. 순서지 인쇄와 차량 예약, 식당 섭외까지 모두 A씨 몫이었다. 행사 당일 출발시간인 오전 9시가 지나도록 지도교수 B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A씨가 20차례 가까이 전화했지만 받지도 않았다. 40분이 지나자 다른 교수들이 먼저 출발하자고 했다. A씨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불호령을 내리는 B교수가 무서웠지만 교수와 학생 50여명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버스를 출발시켰다.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 점심 무렵 홀로 세미나장에 온 B교수는 내내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뒤풀이 술집에서 B교수는 평소처럼 한 여학생을 붙잡고 술을 권했다. 어깨동무 등 농도 짙은 스킨십도 이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술에 취한 B교수는 A씨를 밖으로 불러냈다. “조교 주제에 교수를 떼어놓고 출발하냐”고 언성을 높였다. “네 부모가 시골에서 땅 파서 널 그렇게 가르쳤냐”는 막말과 함께 “죄송하면 무릎을 꿇어보라”고 했다. 억울한 마음에 A씨가 고개를 드는 순간 B교수의 주먹이 날아왔다. 앞니가 깨질 정도로 맞았지만 A씨는 무력하게 눈물만 삼켰다.

A씨의 사연은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지난 8월부터 전국 모든 대학원생을 상대로 접수한 ‘교수의 갑질’ 사례 중 하나다. 조교에게 인분을 먹이고 상습 폭행한 ‘인분교수’ 사건 등 학내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자 학생들이 피해사례를 수집하고 나선 것이다.

총학은 접수된 사연을 웹툰으로 제작해 지난 6일부터 각 대학 커뮤니티 등에 배포하고 있다. 강태경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잘 모르는 학생은 자신이 당하는 현실을 당연한 거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며 “알기 쉬운 웹툰을 통해 공감하는 목소리를 모아 부조리를 고쳐 나가려는 취지”라 설명했다.

실제로 학생들은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연구생명이 지도교수에게 달려 있어서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지난해 전국 대학원생 235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1071명(45.5%)은 언어·신체·성적 폭력, 차별, 사적노동, 저작권 편취 등 부당 처우를 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중 65.3%는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불이익이 두렵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분교수가 나타나는 걸 막으려면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왜곡된 주종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 회장은 “석 달간 전국에서 사례를 모았지만 이런 조사에 응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억압된 분위기부터 바꿔야 건전한 대학 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