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장. 한국 대표 단색화가 박서보의 ‘묘법. No.2-80-81’이 낙찰되는 순간, 현장에서는 ‘와’ 탄성이 흘러나왔다. 추정가를 훨씬 뛰어넘는 767만 홍콩달러(11억4400만원·이하 수수료 포함)였다. 박서보는 이번 경매의 최대 화제를 낳았다. 전날 크리스티홍콩의 경매에서 또 다른 작품 ‘묘법 No.65-75’은 940만 홍콩달러(13억9078만원)에 거래됐다. 박서보는 이우환, 정상화에 이어 한국 생존 작가로는 세 번째로 10억원 이상에 작품이 판매되는 ‘10억원 작가 클럽’에 들게 됐다.
홍콩 경매 시장에서는 단색화를 비롯한 한국 추상화의 인기가 거침이 없다. 국내에서 제기되는 거품론을 비웃는 듯하다. 서울옥션 경매는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윤형근 등 단색화 작가를 비롯해 김환기, 유영국, 김창렬, 이성자 등 추상화가 작품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단색화 등 1970년대 추상 계열이 인기를 얻고 있는 여세를 몰아 1세대 추상작가인 유영국의 작품도 처음으로 내놓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홍콩 경매에서 한국 경매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운 김환기의 ‘점화’(16-Ⅱ-70#147)는 이날도 관심을 모으면서 1593만 홍콩달러(23억7600만원)에 팔렸다.
아시아에서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중국 작가 산유는 하이라이트를 연출했다. 엽서 3장 정도 크기(28.5×15.9㎝) 작품 ‘무제’가 열띤 경합 끝에 1180만 홍콩달러(17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최근까지도 인기 작가였던 미국의 제프 쿤스,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의 팝아트, 백남준의 TV로봇 작품은 유찰됐다. 아시아 시장이 ‘추상’으로 급격히 이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석을 낳게 한다.
크리스티홍콩은 전날 컨벤션전시센터 그랜드홀에서 연 이브닝 세일에서 경매순서 1번부터 6번까지 김환기, 윤형근, 정상화, 박서보 작품으로 채우는 시도를 했다. 이브닝 세일에선 엄선된 컬렉터를 대상으로 프리미엄 작품을 선보인다. 가장 중요한 경매 첫머리를 한국 작가, 그것도 추상계열로 장식한 것이다. 김환기의 ‘무제’는 새 두 마리가 나는 비구상으로 추정가의 3배 가까운 580만 홍콩달러(8억6500만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대만에서 온 50대 사업가라고 밝힌 한 컬렉터는 “인테리어가 점점 심플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니멀 경향의 단색화 등 추상화가 사랑받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28일 K옥션 홍콩 경매에서도 김환기의 ‘귀로’는 최고가인 23억5472만원에 팔렸다.
한편 일본인 컬렉터가 대거 소장품을 내놓은 서울옥션의 고미술 경매에서는 국보급 백자대호(달항아리)가 1416만 홍콩달러(21억1200만원)로 고미술품 최고가에 팔렸다. 유출된 문화재의 한국 귀환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이 유물은 한국인이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한국 추상화’ 홍콩 경매시장 달궜다…국내 단색화에 뜨거운 관심
입력 2015-11-29 19:24 수정 2015-11-30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