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지호일] 중수부의 빈자리

입력 2015-11-29 18:23 수정 2015-11-29 21:55

지금 검찰총장은 ‘칼’ 없는 장수다. 2013년 4월 중수부 현판을 뗄 때 총장의 직접 수사 기능도 떼어졌다. 수사 현장과의 괴리. 그래서 총장은 ‘말’로 수사를 지도·지휘할 뿐이다. 상명하복 문화와 검사동일체 원칙이 여전히 총장을 보위하지만 돌격명령을 수행할 직속 부대가 없는 장수의 힘은 안팎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다. 떠나는 김진태 총장이 마지막 간부회의에서 후배들의 수사 방식을 훈계한 것은 ‘경기장 밖’ 노감독의 심경 토로였을 터다. “잘 좀 하자”고 선수들을 독려하지만 정작 본인은 시합에 나설 수 없는.

중수부 폐지는 운명처럼 진행됐다. 이명박정부 말기의 검찰은 뇌물 검사, 성추문 검사 등 연이은 악재에 사면초가였다. 검찰 개혁이 시대적 요구가 되자 검찰은 ‘최정예 수사조직’을 매물로 내놨다. 몸통(검찰권) 사수를 위해 ‘부엉이바위의 비극’이란 낙인이 찍혔던 중수부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중수부 폐기는 여야의 대선 공약이 됐다. 중수부 현판 강하식 날 대검은 “드높은 자부심의 반대편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자라고 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조의문을 냈다.

이후 2년 반. 곧 새 총장이 취임하는 검찰은 과연 변했는가. 검찰 힘의 총량은 줄었는가. 총장의 권한은 줄었다 치더라도 그 빠진 만큼의 힘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옮겨갔다. 부패 수사는 오히려 정치풍파에 위태로운 구조가 됐다. 더욱이 특수수사의 역량 약화 징후가 감지된다. ‘수사의 고수’를 길러내던 중수부의 노하우와 인력 양성 시스템까지 단절된 탓이리라. 사정의 중추 역할을 하던 중수부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까에 대한 준비는 미흡했다는 말이다.

거악과 맞서는 특수수사가 무기력하다고 인식되는 순간 부정(不正)은 잡초처럼 번식한다. 이어서 국민 불신이 자란다. 그러니 중수부 현판을 다시 꺼내든, 그 유산을 이을 조직을 만들자고 하면 시대착오일까.

지호일 차장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