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1917∼1995·사진)이 25년간 머물렀던 독일 베를린 자택이 매각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베를린 시내에서 30㎞ 정도 떨어진 자크로우어 키르히베크 47번지. 떡갈나무 숲 속에 자리한 윤이상의 자택은 몇 년째 돌보는 사람이 없어 앞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마당 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연못에는 이끼가 끼고 낙엽이 뒹굴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베를린 자택은 1971년부터 1995년 숨질 때까지 윤이상 음악의 산실로, 그가 유럽 진출 후 작곡한 150여 곡 가운데 초기작 20여 편을 제외한 대부분을 이곳에서 완성했다. 부인 이수자씨와 딸 윤정씨가 관리해오던 자택은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7년 윤이상평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구입해 ‘윤이상기념관’으로 개관할 계획이었다.
이후 몇 차례 음악회가 열렸으나 본격적인 기념관 건립은 흐지부지되고 유족들도 우여곡절 끝에 2010년 윤이상의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자택은 돌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러다 윤이상의 음악에 빠져 ‘국제윤이상협회’를 이끌고 있는 독일 첼리스트인 볼프강 슈파러가 자택 관리를 맡았다. 슈파러는 1998년 ‘윤이상명예회복청원서’를 들고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베를린에서 만난 슈파러는 “100명 가까이 되던 협회 회원도 대부분 숨지고 후원이 거의 끊긴 상태”라면서 “2013년부터는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가스비를 내지 못해 은행에서 차압이 들어와 집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회원 가운데 한 사람이 자택을 매입해 윤이상 음악기념관으로 조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아직 결정된 건 없다”고 덧붙였다.
자택에 있던 ‘글리세-첼로 독주’(1970), ‘오보에 하프와 작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중협주곡’(1977), ‘신라’(1992) 등 친필 악보 3점과 거실 소파, 작곡 책상, 녹음 자료, 서신, 사진, 의류 등 각종 자료는 통영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통영시는 최근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12월 중에 도천테마파크 내 윤이상기념관으로 이들 자료를 옮겨 전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윤이상의 음악 산실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 음악인은 “유럽 음악계에서는 윤이상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발자취를 남긴 거장”이라며 “동백림 사건으로 간첩 혐의를 받아 명예회복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렸는데 자택이 윤이상 음악을 알리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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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윤이상 음악 산실’ 독일 베를린 자택 팔릴 위기… 1995년 사망 전까지 25년간 생활
입력 2015-11-29 18:08 수정 2015-11-29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