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한국, ‘테러자금 거래’ 차단 앞장선다… 자금세탁 방지기구 의장국 지위

입력 2015-12-01 00:46 수정 2015-12-01 05:05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도 2000만원이 넘는 현금을 들고 은행을 찾아가면 창구 직원들이 반드시 물어본다.

“아휴, 최근에 집을 팔거나 경조사가 있었나봐요?”

괜스레 부러워서 던지는 말이 아니다.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거래 내역이 즉시 금융위원회 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다. FIU는 이 거래가 혹시 테러와 연관된 돈은 아닌지, 불법적인 자금을 현금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불법 소지가 있으면 검찰청 국세청 국가정보원 등에 자료를 넘긴다.

이런 은밀한 조사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국제사회가 다시 위험 경보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테러자금의 차단과 테러범 정보 공유를 위한 출입국 관리에 국제사회가 협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테러에도 돈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테러에는 국경을 넘는 돈거래가 반드시 수반된다. 세계의 정상들이 그 돈줄을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테러의 돈줄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2001년 알카에다의 9·11테러 이후부터다. 이전까지 불법적인 자금이 합법으로 둔갑하는 돈세탁을 막는 데 주력했던 자금세탁 방지기구(FATF)가 테러자금 조달을 막기 위한 9개 특별 권고사항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공조가 확대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기구인 FATF는 유엔의 ‘테러자금 조달 억제 유엔협약’에 준해 국제사회의 공조를 이끌고 있다. 테러자금 조달 억제 유엔협약은 현재까지 187개국이 가입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테러 방지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테러자금 차단을 앞장서서 언급한 이유는 현재 FATF의 의장국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4년 유엔협약을 비준했고 2009년 FATF 정회원이 됐다. ‘공중협박 자금조달 금지법’을 2008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테러자금을 마련해주거나 전달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테러 관련자로 지목된 이들의 금융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한국에서는 FIU가 테러자금을 차단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병래 FIU 원장은 “은행 보험 주식 등 거의 모든 금융 거래에서 테러와 관련된 자금으로 의심되는 것은 모두 신고하게 되어 있고, 자금세탁이나 거래 창구로 은밀하게 활용될 수 있는 카지노 같은 곳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테러와 관련된 인물과 조직의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금융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FIU에 신고되는 의심거래 보고는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보고된 건수는 50만1425건으로 2013년보다 32% 늘었고, 올해는 다시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지난해 FIU가 범죄와 관련된 거래로 의심된다고 판단해 검찰 등에 정보를 전달한 건수는 371건으로 2013년의 152건보다 배 넘게 증가했다.

한국은 특히 중국을 경유한 북한과의 거래나 산유국인 중동 국가와의 거래가 빈번해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7월 부산의 한 수출업체와 은행 간부가 FATF 제재 대상인 이란의 금융 거래를 도와줬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