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올해의 김장도 온 가족이 나섰다

입력 2015-11-29 17:40

다소 늦게 김장을 했다. 스물다섯 포기 남짓에 염장 배추를 구입해서 하는 김장이라 일감이랄 것도 없지만 아주 뿌듯하다. “김장을 하고 나면 부자 된 기분이란다” 하시던 시어머님 생각도 나고, 특유의 굴깍두기로 김장 마무리를 해주던 친정엄마 생각도 새록새록 난다. 출가 후에는 엄마의 김장을 도와준 적은 별로 없음을 후회한다. 딸이, 물론 자기 먹을 김치 챙기느라 그러는 거겠지만, 꼬박꼬박 김장에 참가해주는 게 고맙다. 더 고마운 것은 딸의 남자친구의 참가다. 어릴 때부터 김치 맛을 익혀오지 않은 다문화 남자임에도 김치를 너무너무 좋아할 뿐 아니라 김치 맛을 귀신같이 감별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젊은 세대 덕분에 안하고 말지, 대충 사 먹지 할 수가 없다.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김장 주말 스케줄’을 먼저 잡아놓을 정도다. 예쁘고 또 고맙다.

레시피는 아직도 전수하지 못했다. 대충 손대중에, 냄새 대중, 촉감 대중 하는 주제에, “김장김치는 어떻게 해도 맛있어”라는 확고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나다. 사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은데도 여전히 고집불통이다. 정확한 부피, 정확한 무게 재 달라는 젊은 세대에게 항상 타박을 받으면서도 ‘다음에 해 줄게’ 하고 또 깜빡 잊어먹곤 한다. 이러다 제대로 전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도 다음에 하지, 다음에 하지 하다가 친정엄마가 만든 굴깍두기의 그 나른하고 상쾌한 맛을 내는 비결을 전수받지 못했었다. 시어머님의 독특한 시커먼 갈치속젓김치 맛을 내는 비결도 전수받지 못했다. 이제 정신 차릴 때다. 그 어떤 것도 배움의 대상이 될 때는 적확한 기본이 있어야 거기에 손맛을 가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젊은세대에게 본이 될 늙은세대가 되고 싶다. 딸 커플이 김장에 참가하면서 남편의 손은 무척 가벼워졌지만, 이 남자 역시 김장 일정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저울을 잘 써서 엄마표 김장 레시피를 전수해주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하리라 마음먹는다. 젊은세대가 그들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