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전투 마약

입력 2015-11-27 18:15

‘캡타곤(captagon) 한 알이면 테러리스트를 두려움 없는 살인 병기로 만든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뒤 워싱턴포스트와 뉴스위크 등의 기사 내용이다. 일부 파리 테러범들이 머물렀던 호텔방에서 주사기 등 마약 투약 기구가 발견됐다. 중동 지역 내전에서, 특히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이 전투나 살상 행위를 하면서 암페타민이 주성분인 각성제 캡타곤을 사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캡타곤을 투약하면 며칠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고, 스스로 무적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움도 없어진다고 하니, 살상 행위를 쉽게 할 수도 있을 게다. 일제가 가미가제들에게 천황의 신주를 내려주면서 그 안에 히로뽕을 타서 두려움 없는 맹목적 충성심을 한껏 높였다는 분석도 많다.

시리아, 레바논 내전에서는 전투가 끝난 뒤 적의 사망자나 포로들에게서 캡타곤이 발견됐다고 선전전을 벌이기도 한다. 나아가 이교도를 물리칠 힘을 유지하기 위해 캡타곤을 먹게 하는 내부적 독려까지 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장기간 전투 와중에 내전에 참여하는 모든 파벌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연된 캡타곤이 내전을 장기화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을 정도다.

내전이 마약의 수요와 공급을 급격히 창출하고, 걸프 국가 부유층의 은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중동 지역 마약 사업도 팽창하고 있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의 베카 계곡은 정부 공권력도 미치지 않는 마약 생산 기지가 돼 버렸다. 이달 초 사우디 왕자가 캡타곤과 코카인을 밀매하려다 레바논 공항에서 체포됐고, 터키는 지난 주말 시리아 국경 부근에서 밀수입되려는 캡타곤 1090만정(2t)을 적발했다. 레바논 동부지역에는 소규모 마약 제조시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캡타곤 한 알은 이 지역에서 1∼2달러에 팔린다고 한다.

이쯤 되면 머지않은 장래의 저강도 전쟁이나 소규모 국지전에서 캡타곤류의 마약이 전투병들의 작전 필수 용품으로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부상병을 위한 모르핀이 아니라 파괴 본능과 살상 능력 극대화를 위해 ‘전투 마약’을 사용한다면…. 이런 상상까지 가능케 하는 현실의 광기(狂氣)가 참 끔찍하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