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 앞두고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에 대한 논란이 재등장하고 있다. 루터의 '반유대주의'와 칼뱅의 '제네바 학살설'이 그것이다. 루터의 '안티세미티즘'(반유대주의)은 최근 독일교회가 반성을 표명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칼뱅에 대해서는 진부한 논란의 반복이라는 시각이 많다.
독일개신교협의회(EKD)는 지난 11일 연례 시노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루터의 반유대주의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에 반대해야 할 특별한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시노드는 신학적 문제를 비롯해 교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EKD는 “신학적 오류를 인정하고 유대인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며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에 맞서야 하는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했다.
루터의 반유대주의 논란은 1524년에 쓴 소책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촉발됐다. 이 책자는 20세기 들어 나치가 독일의 전통 미덕으로 선전했고 1934년 9월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서는 유리상자에 넣어 전시까지 했다. 나치는 이 내용을 왜곡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루터는 원래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셨다’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유대인들은 성경이 그리스도를 분명히 일러준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유대 변증학자들이 이를 공격하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을 썼다. 책자에서 루터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영적 문제이지 혈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 구약성경은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준다고 했다.
칼뱅의 ‘제네바 학살설’은 최근 국내 기독교 서적 저자인 A씨가 감리교 배경의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글을 올리며 촉발됐다. 칼뱅이 제네바 시절 개신교를 반대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는 내용으로, 에스파냐의 인문주의자 세르베투스 화형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B선교사는 “칼뱅이 수십 명의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였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 되기 위해서는 16세기 당시의 역사 자료들이 제시돼야 하고 그 사료의 변천사까지 언급돼야 옳은 주장이라 할 수 있다”며 “A씨 논지 어디에서도 1차 자료는커녕 2차 자료 역시 없다. 엄중한 역사적 작업을 너무 쉽게 다루었다”고 지적했다.
역사가들은 칼뱅은 당시 사형선고를 내릴 만한 어떠한 위치에도 있지 않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세르베투스와 관련해서는 칼뱅이 감옥에 찾아가 설득까지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를 부인해 로마가톨릭과 개신교 측에서 이단으로 규정했다. 당시 이단 처벌은 두 종파 모두 화형을 시행했다.
칼뱅 전문가인 이정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당시 입법 행정 사법적 권한은 제네바시(市) 의회에 있었고 칼뱅은 이민자 목사로 그런 권한이 없었다”며 “컨시스토리(시의회에서 파송된 치리 기관) 회의록이나 목사회 회의록은 칼뱅과 그의 동료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성경적인 신앙과 실천을 정하기 위해 신중히 고민하고 토론했으며 증인들과 증거를 통해 권징을 결정, 시의회에 상정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칼뱅의 전기와 관련해서도 친(親)칼뱅 전기와 반(反)칼뱅 전기로 구분하고, “최근 논란은 반칼뱅 전기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상목 기자
종교개혁 500주년 앞두고 또 불거진 논란
입력 2015-11-29 18:45